조현병은 ‘질병’… 편견 없어야 범죄도 없다

입력 2019-05-03 00:29 수정 2019-05-03 00:29
게티이미지뱅크

조현병은 2011년까지 정신분열증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 단어가 주는 부정적 편견이 강해 명칭을 바꿨다. 이름이 달라졌으니 사회적 낙인도 지워졌을까.

경남 진주에서 조현병 병력이 있는 안인득(42)씨가 이웃 5명을 살해한 사건 이후 조현병 환자의 강력범죄가 잇따라 알려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심신미약자 관련 청원은 1일 기준 1000개를 넘어섰다. 이들은 심신미약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잔혹한 수법으로 살인을 저질렀고,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조현병 환자를 격리해 범행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낙인’ 찍는 사회… 이대론 조현병 범죄 못 막는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로 구성된 ‘뇌부자들’의 김지용 전문의는 “조현병 환자의 범죄는 음주 범죄와는 결이 다르다. 음주는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지만 조현병은 말 그대로 병”이라며 “조현병 환자가 범죄를 저지르면 감형되기 때문에 국민적 반감이 큰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환자에게 낙인을 찍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강력범죄를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31일 정신과 진료를 받던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교수 유족이 당부의 말을 남긴 이유도 조현병 환자에 대한 낙인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생전 임 교수는 정신질환자가 인격적으로 대우받는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애쓴 것으로 알려졌다. 저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에 우울증 극복기를 담으면서 당시 고통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의 책에는 정신과 의사조차도 편견 탓에 고통받는데, 환자들은 얼마나 큰 괴로움을 느낄지 염려하는 내용이 적혀있다.

범죄자 신상공개, 조현병 낙인 찍을 수도

17일 진주시 가좌동 한 아파트에서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숨지게 하고 13명에게 부상을 입힌 안씨는 편집증적 조현병을 앓았다. 증세는 중증이었다. 그는 2011년 1월부터 2016년 7월까지 68차례나 관련 진료를 받았다. 하지만 경찰은 그가 사전에 범행을 계획한 정황이 있고, 범행 당시 자신의 행동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봤다.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이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후 경찰은 안씨의 신상 공개를 단행했다.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요건은 크게 네 가지다. 흉악범일 것, 공익에 부합할 것, 공평할 것, 청소년이 아닐 것 등이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이 조건에 부합한 것으로 봤는데, 특히 그가 사전에 방화도구를 구비하는 등 범행을 계획했다는 사실이 공개 결정에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의 정신질환이 범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말 조현병을 지닌 환자는 범행을 사전에 계획할 수 없을까. 김 전문의는 “어쩌면 (환청과 망상에 시달리는) 이들은 방어의 일환으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며 “조현병 범죄를 한 개인의 일탈로 봐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조현병이란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나는 정신질환으로 환청과 망상이 대표 증상이다. 환청은 환자의 행동을 일일이 간섭하며 특정 행동과 말을 하라고 지시한다. 없는 것이 보이는 환시, 없는 것이 만져지는 환촉 등 신체환각 증상을 호소하기도 한다. 망상 환자의 경우 누군가에게 감시를 당하고 있다거나 주변인들이 작당해 자신을 괴롭힌다고 믿는다.

해외의 경우 조현병과 강력범죄의 연관성을 살필 때 사전 계획 여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연구를 내놓기도 했다.

오히려 범죄율 낮아… 재범율이 문제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강력범죄가 줄줄이 알려지고 조현병 환자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 찍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의 범죄율은 정신질환을 앓지 않는 이들에 비해 낮다.

2017년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정신질환자 가운데 범죄를 저지른 비율은 0.136%이다. 같은 기간에 발생한 전체 인구의 범죄율은 3.93%로 28.9배 높았다. 특히 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은 정신장애인의 경우 0.014%로 전체 강력범죄율(0.065%)에 크게 못 미쳤다. 여기서 범죄를 저지르는 편집성 조현병이 있는 이들은 1년에 200명 안팎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대신 정신건강의학계는 재범율에 주목한다. 조현병 환자의 경우 초범을 저지르는 비율은 일반인에 비해 낮지만 재범율은 상대적으로 높다. 진주 방화·살인사건, 임 교수 피살도 재범이었다. 만약 초범 단계에서 사회가 의학적 개입을 한다면 재범의 위험을 낮출 수 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재범을 막기 위해 정신의학 전문가를 범죄 수사 초기 단계부터 투입한다. 조현병 환자의 범행으로 추정될 경우 정신건강의학 전문의가 현장에 출동해 진료 여부를 판단한다. 위중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재판을 받게 되는데 선고와 치료를 함께 명한다. 선고된 치료기간이 만료되면 전문의가 연장 치료 여부를 다시 진단한다.

김 전문의는 “조현병 환자의 경우 처벌보다 치료를 우선해야 한다”며 “이들을 무조건 격리시킨다면 제대로 된 치료가 될 리 없다. ‘정신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이 자신의 건강을 위해 자유롭게 병원을 찾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한다. 주변에서도 관심을 갖고 치료를 독려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낙인 지우고, 사회에서 품어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조현병 환자는 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입원치료를 받은 인원은 10만명 정도다. 전문가들은 조현병의 경우 적기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다면 문제 없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약물치료로 알려져 있다. 조현병 환자의 약 20%가 약물을 수년 동안 복용하면 완치되고 그렇지 않더라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치료된다.

다만, 격리 차원에서 무조건적인 입원은 지양해야 한다. 조현병으로 입원치료를 받았던 10만명 중 110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조사됐다. 격리 외에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고, 이같은 방법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정신질환자의 장기입원 비중이 높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환자를 병원에서 내보내고 지역사회의 도움을 받으며 융화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장기 정신질환자 입원율을 낮추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노력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정신병원의 폐쇄병동을 모두 없앴다.

물론 반드시 입원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재발가능성이 현저히 높고, 후유증이 예상되는 경우 입원 등 장기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김 전문의는 “국가가 나서서 조현병 환자를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며 “범죄 위험이 있는 경우,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거나 혹은 곧 불가능해질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는 경찰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권고해야 한다. 이후 입원과 통원 치료 중 무엇이 적절한지는 의료진이 판단하면 된다”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