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FC 바르셀로나가 ‘꿈의 무대’에 가까이 다가갔다. 2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누캄프에서 잉글랜드 리버풀과 가진 2018-2019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 홈경기에서 3대 0으로 승리했다. 오는 8일 적진 안필드 스타디움에서 펼쳐질 2차전에서 2점 차로 져도 결승에 진출한다.
‘트레블 3회’라는 불가능해 보였던 올 시즌 목표가 눈앞에 놓였다. 이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확정했고, 국왕컵(코파 델 레이) 결승에 올랐다. 주장 리오넬 메시는 시즌을 앞둔 지난해 누캄프에서 열린 행사에서 “올 시즌은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빅이어)를 가져오겠다”고 공언했다. 그가 우승하겠다고 공개적인 선언을 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로 평가됐다. 메시가 팬들과의 약속을 지켜낼지는 조금 더 지켜볼 일이지만 현재 바르셀로나의 기세가 어느 때보다 맹렬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바르셀로나의 승리로 끝난 뒤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메시를 비췄다. 그는 개인 프로통산 600호 골을 터뜨렸으며 잉글랜드 최강의 수비로 평가됐던 리버풀을 완벽히 무너뜨렸다. 실제로 리버풀이 3점 차 패배를 당한 것은 90경기 만이다. 2017년 10월 토트넘 홋스퍼전(1대 4패) 이후 19개월 만에 벌어진 참사다. 잉글랜드프로축구선수협회(PFA)로부터 올해의 선수상을 받으며 현역 수비수 최고로 꼽히는 버질 반다이크 역시 이날은 힘을 쓰지 못했다.
바르셀로나 선발로 나서 풀타임을 소화한 아르투로 비달은 “리버풀이 더 많은 기회를 가져갔다. 그러나 그 기회를 구체화시킨 것은 우리였다”고 경기를 총평했다. 그의 말 그대로다. 리버풀은 바르셀로나의 중원 압박에 전혀 기죽지 않았으며, 준수한 경기를 펼쳤다. 전체적인 슛 숫자(14대 11)가 말해주듯 흐름을 손에 쥐고 있었던 순간도 더 많았다. 특히 후반에는 기록적인 부분에서 상대를 압도했다. 후반 점유율(57%-43%), 패스 숫자(284개-217개), 유효슛(4개-3개)에서 모두 앞섰다. 수치에서 알 수 있듯 리버풀의 득점을 향한 공격 물결은 거셌다. 적어도 3점 차 패배는 그들이 보여준 경기력에 비교해 가혹한 것이 분명하다.
축구는 결국 골을 넣어야 이기는 스포츠다. 경기력과 별개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더 좋은 축구를 했더라도 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바르셀로나와 리버풀전을 통해 그러한 축구 통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킬 수 있었다. 그 이전에 에르네스토 발베르데 바르셀로나 감독의 전술적 판단에 손뼉을 쳐주고 싶다.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의 패착도 있었지만 발베르데 감독이 들고나온 전략 역시 훌륭했다. 메시의 환상적인 플레이를 뒷받침했던 것은 판을 설계한 발베르데 감독의 영리함이었다. 용병술에서 클롭 감독을 압도했다.
클롭의 패착, 바이날둠의 펄스 나인
호베르투 피르미누는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지난 27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허더즈필드전에서 당한 사타구니 근육 부상의 여파가 남아 있던 것으로 보인다. 클롭 감독은 피르미누의 몸 상태가 선발로 뛸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리버풀의 스리톱에서 피르미누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나서면서도 이타적인 역할에 더 집중하고 있다. 양 측면 공격수 사디오 마네와 모하메드 살라를 위한 링크맨 역할이다. 피르미누를 대신할 자원으로 조르지니오 바이날둠이 낙점됐다. 전례가 없었던 바이날둠의 톱 활용은 클롭 감독이 들고나온 나름의 묘수였다.
살라와 마네는 측면 간격을 최대한 넓게 벌려 섰다. 공간을 크게 활용해 상대 센터백인 클레망 랑글레와 헤라르드 피케를 끌어들이고자 했다. 바르셀로나의 약점을 측면에서 찾았는데, 이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앞서 치렀던 8강 1차전 경기를 어느 정도 참고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올레 군나르 솔샤르 감독이 들고나온 수비적인 수는 일정 부분 들어맞았다. 결과도 한 점 차 패배로 나쁜 수준이 아니었다.
그때 맨유는 자신들의 역습으로 전개될 때 바르셀로나 미드필더진들의 수비가담이 빠르지 않다는 것을 노렸다. 바르셀로나는 수비전환 시에 이반 라키티치가 오른쪽, 필리페 쿠티뉴가 왼쪽으로 내려와 수비에 가담하는 변칙적인 4-4-2 형태로 변하지만, 커버가 빠른 편이 아니다. 리버풀은 이 점을 공략하고자 했다. 발이 빠른 마네와 살라를 이용해 양 사이드를 최대한 넓게 활용했다.
바이날둠은 전술적 열쇠를 쥐고 있었다. 살라와 마네가 간격을 넓게 벌려 선 만큼 그 사이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 형태의 리버풀 4-4-2 포메이션에서 꼭짓점 미드필더를 맡았다. 마네, 살라와 함께 중앙으로 좁혀들어가는 액션을 취하며 두 센터백과 골키퍼를 압박하는 역할이다.
바이날둠은 상대 포백과 미드필더 사이의 공간을 최대한으로 벌리며 라인을 올릴 바르셀로나의 뒷문을 공략해야 했다. 바이날둠을 통해 피케로 시작되는 바르셀로나의 빌드업을 시작점에서부터 압박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바이날둠 압박 때문에 피케가 오른쪽 측면에 선 세르지 로베르토에게 빌드업을 전개하면 나비 케이타가 곧바로 따라붙었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라키티치가 공간을 찾아 들어가 볼을 받아내면 전진해있던 앤드류 로버트슨이 곧바로 압박했다.
바르셀로나의 공격을 1선에서부터 연쇄적으로 차단하겠다는 클롭 감독의 계산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클롭 감독은 메시에게 전담 수비수를 붙이지 않았다. 바이날둠부터 케이타와 제임스 밀너, 파비뉴로 시작되는 강도 높은 압박까지 연쇄적인 팀 연계로 그에게 볼이 향하는 것을 최대한 막고자 했다. 과거 주제 무리뉴 감독이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사령탑 시절 수비수 페페에게 맡겼던 역할을 파비뉴가 비슷하게 수행했다. 반다이크와 더불어 메시를 중원의 우리 안에 가두는 형국이다.
바이날둠 효과는 딱 10분간 유효했다. 이후 흐름에 적응한 바르셀로나는 바이날둠에게 센터백과 미드필더 사이 공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바이날둠의 전진적 움직임을 읽어내는 피케의 노련함이 돋보였다. 바이날둠의 부진은 살라와 마네의 단절을 불러왔다. 마네의 개인 기량에 의존해 측면으로부터 전개되는 공격 전술이 경기 내내 반복됐던 이유다.
클롭 감독은 바르셀로나의 집중 견제 대상으로 호르디 알바를 짚었던 것으로 보인다. 알바가 공격 상황에서 높게 전진해 열려있는 측면 공간을 활용하며 메시와의 연계를 펼치는 모습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바이날둠의 가짜 9번(펄스 나인) 기용 역시 그러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살라는 알바의 전진을 최대한으로 막기 위해 오른쪽 측면의 움직임을 제한시킬 필요가 있었다. 1선에서 왼쪽 측면 수비 역할도 하는 마네를 중앙으로 세우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결국 중앙에 나설 선수로 공격적인 성향이 짙은 다니엘 스터리지보다는 수비적인 압박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바이날둠을 선택한 것이다.
다만 케이타의 부상으로 인한 교체 때 바이날둠에 대한 전술적 변화를 일찍 주지 않았던 것은 의문점으로 남는다. 케이타는 교체 투입된 조던 헨더슨보다 훨씬 공격적인 성향을 띄는 선수다. 왼쪽 측면으로 전진해 바이날둠과 공격 옵션에 대한 경우의 수를 늘릴 수 있다. 그러나 헨더슨은 케이타보다 아랫선에 맴돌며 밀너와 중앙에서 압박을 넣는 움직임을 펼쳤고, 이는 바이날둠의 고립을 불러왔다. 메시를 가두려다 오히려 바이날둠이 갇힌 꼴이다. 클롭 감독이 패착을 인정하고 전술적 수정을 했던 것은 0-2로 벌어졌던 후반 34분이었다.
멜루가 아닌 비달, 발베르데 기용의 승리
바이날둠의 펄스 나인 못지않게 바르셀로나 선발진에서 의외였던 것은 아르투르 멜루의 제외였다. 일각의 현지 매체들이 경기의 키 플레이어로 멜루를 지목했을 정도로 그가 최근 바르셀로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막강했다. 전방에서 강력한 압박을 시도하는 리버풀 미드필더진을 상대로 멜루가 얼마나 탈압박 전개를 효율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바르셀로나의 공격 흐름도 달라질 터였다. 그러나 발베르데 감독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아르투로 비달을 선택했다.
비달의 선택은 바르셀로나 중원에서 점유율을 일정 부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로 경기 점유율은 리버풀이 52%대 48%로 바르셀로나를 근소하게 앞섰다. 바르셀로나가 점유율에서 밀리는 모습은 보기 힘든 장면이다. 올 시즌 바르셀로나가 의도적으로 점유율을 내줬던 경기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 정도로 평소 볼 소유권을 손에 쥐고 경기를 풀어나가는 팀이다.
리버풀의 투박한 압박을 상대하기 위해 똑같이 투박한 비달을 꺼내 들었다. 비달의 기용은 성공적이었다. 경기 내내 강도 높은 압박을 펼치며 리버풀의 공격 흐름을 효과적으로 통제했다. 수비 시 많은 공간을 내주지도 않았다. 역습을 허용했을 때 곧바로 오른쪽 미드필더 지역으로 내려왔다.
비달은 많은 활동량을 통해 밀너와 헨더슨의 압박을 측면으로 끌어당겼다. 루이스 수아레스와 메시가 전방에서 받는 압박을 덜기 위함이었다. 강한 압박 성향을 지닌 밀너의 성향을 이용했다. 비달을 견제하고 리버풀의 전진 패스 옵션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바이날둠이 좀 더 아랫선으로 내려와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리버풀이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볼 점유율에서 앞서며 공격권을 쥐고 있었지만 수비적인 허점은 많았다. 만회골을 노리기 위해 볼 점유가 전진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며 압박의 라인을 끌어올리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배후 공간이 느슨해진 것이다. “기회를 구체화 시킨 것은 우리였다”는 비달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세르지 로베르토가 마네의 스피드를 제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판단한 발베르데 감독의 빠른 교체도 훌륭했다. 발베르데 감독은 단순히 로베르토에서 넬손 세메두로 윙백 교체를 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전반적인 포지션 변화를 줬다. 쿠티뉴를 제외해 비달을 그 위치로 전진시키고, 로베르토를 비달 자리에 놓았다. 발베르데 감독의 전략은 적중했다. 70분 가까이 그라운드를 누빈 마네가 곧장 투입된 세메두의 민첩성을 따라가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로베르토의 중원 가세도 빼앗겼던 공격의 흐름을 되찾아오는 시발점이 됐다.
비달의 움직임은 쿠티뉴 교체와 함께 더욱 공격적으로 변했다. 쿠티뉴가 위치했던 좌측 측면까지 올라가 메시와의 연계를 시도했다. 리버풀은 알바와 메시의 연계 저지라는 일차적인 목표 달성에는 성공했으나 비달의 움직임을 제한하지 못했다. 많은 활동량을 가져가던 리버풀은 후반 30분이 넘어선 시점에서 소강상태에 들어섰고, 연계 과정에서 움직임이 눈에 띄게 무뎌졌다. 그때도 돋보였던 것은 비달의 활동량이다. 포지션 변화가 있었음에도 쉬지 않고 뛰었다. 비달의 투혼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이유다.
케이타의 부상으로 인해 일정 부분 전술 수정이 불가피했던 탓도 있었지만 클롭 감독이 발베르데 감독의 전략에 별다른 대응책을 내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발베르데 감독은 비달의 전진과 로베르토의 중원 기용이라는 변칙적 수로 메시가 활약할 수 있는 바탕을 제공했다.
리버풀에 긍정적인 면
결과적으로 리버풀이 2차전에서 승부를 뒤집기에는 어려운 상황이 됐다. 맨체스터 시티 결과에 따라 프리미어리그 우승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으므로 오는 5일 리그 37라운드 뉴캐슬전에서 전력을 쏟아야 한다. 반면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확정한 바르셀로나는 같은 날 치러질 셀타비고전에서 주축 대부분이 숨 고르기를 할 수 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맞이할 원정 경기에서 1골만 득점하면 상대는 원정골 다득점 원칙에 따라 5골을 득점해야 한다.
리버풀은 오는 8일 홈구장 안필드에서 펼쳐질 2차전에서는 뒷공간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고 공격적 승부수를 띄울 것이 명확하다. 다만 1차전 선발에서 배제됐던 피르미누와 트렌트 알렉산더 아놀드의 복귀를 제외하면 전술 국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1차전을 복기했을 때 전체적인 피치 위의 흐름만 놓고 보면 바이날둠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리버풀 역시 괜찮은 경기를 펼쳤기 때문이다.
메시의 맹활약에 몸을 숨겼지만, 바르셀로나 다른 공격진들의 상태가 좋지 못했던 것은 분명하다. 수아레스는 선제골과 라인을 깨뜨리며 돌아 뛰는 장면을 제외하면 위협적이라고 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쿠티뉴는 발베르데 감독이 이른 시간 제외했을 정도로 측면 공격에서 불안함을 보였다. 교체로 나선 오스만 뎀벨레가 경기 종료 직전 일대일 상황에서 날린 슛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테어 슈테겐 골키퍼의 선방 덕분에 위기를 넘겼지만 리버풀 역시 내용만 놓고 보면 1~2골은 얻어낼 수 있을 법했다.
클롭 감독의 안일한 교체도 있었지만 선수들의 사기 저하도 패인의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본다. 공격권을 칼자루를 쥐었을 때 마무리 짓지 못했다는 불운에서 온 정신적, 체력적 소강상태다. 후반 30분이 넘어선 시점에서 메시가 두 번 째 득점을 터뜨리자 급격하게 무너졌다. 실점이 가져다주는 경기력 저하는 뚜렷하게 나타났다.
결과와 별개로 비달의 말처럼 바르셀로나는 누캄프에서 고전했다. 로베르토는 마네의 움직임을 제한하지 못했고 후반 중반까지는 리버풀의 플레이에 말려 흐름을 내줬다. 바르셀로나는 중앙에서 밀집 형태로 나온 리버풀의 빈틈을 공략하지 못하며 압박으로부터 전개되는 공격적인 전환에 어려움을 겪었다. 메시의 환상적인 개인 기량이 경기의 흐름을 넘어 결과까지 바꿨을 뿐이다. 리버풀은 수차례 위협적인 기회를 잡았던 직선적이고 간결한 롱패스 위주의 공격을 떠올려야 한다.
클롭 감독이 2차전에서 어떤 승부수를 들고나올지가 궁금하다. 전술적 기조에 큰 변화 없이 나설 것으로 예측되지만 1차전과 달라진 구성으로 나설지는 전적으로 그의 선택이다. 분명한 것은 바르셀로나가 누캄프의 위력을 보여줬듯, 결과와 상관없이 리버풀이 안필드의 무서움을 보여줄 차례라는 점이다.
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 전광판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송태화 기자가 함성소리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전하는 스포츠 연재입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