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북 인도적 지원으로 남북 대화 재개 시동?

입력 2019-05-02 16:46 수정 2019-05-02 17:28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일 오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내신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식량난을 호소하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조속히 집행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미 협상과 남북 대화가 모두 답보인 상황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을 매개로 교착상황을 뚫어보기 위한 시도로 해석된다.

대북 인도적 지원 문제는 2일 외교부와 통일부에서 동시에 언급됐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가진 내신 기자간담회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은 이것이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다는 사안이라는 것”이라며 “특정 시점을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정부로서는 조속히 집행이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강 장관은 “국제사회의 어떤 의지가 있어야 하고, 모아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미 워킹그룹에서) 대북 문제와 관련한 여러 현안에 대한 포괄적 협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다음주로 예상되는 한·미 워킹그룹 회의에서는 인도적 지원 문제가 구체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통일부 당국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정부는 북한 주민의 생활 개선을 위한 인도적 지원은 지속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이에 대해서는 한·미 간에도 공동의 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 단계에서 당국 차원의 식량 지원이 구체적으로 검토되고 있는 것은 없다”면서도 “민간 차원의 인도적 지원은 적극 지원해 나간다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최근 북한 당국이 우리 정부에 공식적으로 식량 지원을 요청한 적은 없다고 한다.

정부가 당국 차원의 지원 계획은 없다고 밝힘에 따라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은 국제기구나 민간단체를 통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북한의 식량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방북했던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조만간 조사결과 및 대북 지원 여부를 발표하면 국제사회와 보폭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2017년 9월 유니세프와 WFP에 공여하기로 한 800만 달러의 지원금도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800만 달러는 2년 전 상황”이라며 “다시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800만 달러 그대로 한다고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대북 인도적 지원 카드를 다시 꺼낸 것은 현재의 교착 국면에서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가 제한적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북한이 지난 2월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를 통해 국제기구에 긴급 식량 원조 요청을 한 만큼 북한의 수용 가능성도 크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제안에 북한이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북한과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쓸 수 있는 카드가 사실상 인도적 지원밖에 없다”며 “북한은 받기는 하겠지만, 핵협상 당사자로서 미국을 설득하라고 요구하는 북한의 기대에 부응하기에는 다소 약한 카드”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인도적 지원을 계기로 당장 남북 대화가 재개되지는 않겠지만, 마중물 역할은 기대해볼만 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농촌진흥청은 북한의 곡물 생산량이 전년 대비 약 16만t 감소한 455만t으로 추정했다. 지난 2월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는 지난해 식량 생산량이 495만1000t으로 전년 동기 대비 50만3000t 감소했으며, 148만6000t이 부족하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신문은 지난달 29일 기사에서 “금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쌀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을 소개하며 “금보다 쌀이 더 귀중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최승욱 이상헌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