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인생작’이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MBC·2006)이었다면, 30대 인생 캐릭터는 이번 작품의 조선 왕 영조였던 것 같습니다. 연기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부족했다고 여겼던 것들에 대해서 새롭게 시도했고, 그만큼 제 걸로 만든 부분들이 많았던 작품이었어요.”
지난해 12월 군 대체복무를 마치고 첫 복귀작으로 드라마 ‘해치’(SBS)를 택했던 정일우(32)는 이렇게 종영 소감을 전했다. 30대를 맞이한 그가 다시 한번 힘찬 발걸음을 떼는 작품이었다. 극은 드라마로는 이례적으로 영조의 청년기를 다뤘다. 연잉군 이금이 무수리 몸에서 태어난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대권을 쟁취하는 과정을 담았다.
주인공을 맡은 정일우는 왕의 무게감과 젊음 특유의 밝은 분위기를 안정적으로 오가며 극의 흥행을 이끌었다. 시청률 6~8%(닐슨코리아)대를 꾸준히 기록했는데, 동시간대 드라마 중 1위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2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정일우는 “우여곡절도 많았고, 아쉬운 부분도 많지만 많은 사랑을 받아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테크닉보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을 가지고 연기를 하려 노력했습니다. 얼굴이나 눈을 최대한 쓰지 않으려 했어요. 시트콤으로 데뷔했고, 로맨틱 코미디 같은 작품을 해오면서 표정이 조금 과할 때가 있다고 느꼈었습니다. 책을 많이 찾아보기도 했고, 영화 ‘사도’(2014) 등 영조라는 인물이 나온 작품은 다 본 것 같습니다.”
유난히 힘에 부치는 작품이기도 했다. 감정 소모가 매우 크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촬영해야 했던 탓이다. 촬영 중 10년 넘게 키우던 반려견이 세상을 떠나 개인적 상심이 컸고, 성대 결절이 와 병원을 오가며 촬영하기도 했다. 그는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지칠 때면, ‘악으로, 깡으로’ 버틴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연기 혼은 그가 생각하는 향후 배우로서의 삶과도 맞닿아 있었다.
“촬영장이 정말 그리웠습니다. 그전에도 마찬가지지만, 복귀할 때 든 생각은 작품 내 역할의 크기를 떠나 욕심나는 역할을 택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단 생각이었어요. 그렇게 열심히 소화해 가다 보면 점점 발전해나가는 배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장의 ‘성과’보단 배우로서의 지속적 ‘성장’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뜻인 듯했다. 정일우는 신드롬을 일으켰던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데뷔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MBC·2009), ‘49일’(SBS·2011), ‘해를 품은 달’(MBC·2012) 등 작품을 거치며 꾸준히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그는 “20대 가장 후회한 것 중 하나가 작품 사이 공백기들이 길었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못 하지만, 20대 때만 할 수 있었던 역할들이 있었다”며 “40대가 돼 지금을 바라봐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쉬지 않고 연기해야겠단 생각이 크다”고 했다.
평소엔 영화 보는 걸 즐긴다고 한다. 블록버스터보단 독립영화를 좋아한다. 걷기를 즐겨, 산티아고 순례길도 수차례 다녀왔다. 그는 “40~50㎞씩 걷다 보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 대신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 했다. 지난 3월부터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크리빗’을 창간해 편집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치열한 삶을 이어가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정일우는 “다시 한번 나를 담금질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며 “매 순간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30대 때 더 많은 아픔을 겪을 수록, 그게 더 밝은 40대를 가져다줄 것으로 생각한다. 계속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학생 이윤호가 그랬듯, 계속 자라나고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차기작도 곧 결정될 것 같습니다. 2년 넘게 공백이 있었기 때문에 내후년까지 쉬지 않고 일할 생각이에요. 흥행 여부를 떠나,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는 작품을 택하고 싶습니다. 좋은 영향력을 전해 드릴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겠습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