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가”…의붓아버지에게 목졸려 숨진 여중생의 비극적 삶에 동정 쏟아져

입력 2019-05-02 14:48 수정 2019-05-02 17:38

친부모와 계부에게 잇따라 신체적·성적 학대를 당하고 아동보호 전문기관까지 맡겨졌다가 결국 계부에게 목이 졸려 살해된 여중생의 비극적 삶에 국민적 동정이 일고 있다.

딸 살해 공모 혐의를 부인하던 친모는 1일 자정쯤 “할 말이 있다”며 심야조사를 자청해 재혼남이 주도적으로 저지른 범행에 가담한 사실을 인정했다.

경찰의 집중수사에 따라 여중생을 궁지로 몰아넣어 끔찍하게 숨지게 한 천인공노할 범행의 전말이 드러나고 있다.

광주 동부경찰서는 2일 재혼남의 단독 범행을 주장해온 유모(39·여)씨가 심경변화를 일으켜 전날 심야조사에서 자신에게 적용된 살인 및 사체유기 방조혐의를 자백했다고 밝혔다.

범행을 막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재혼한 김씨(31)가 해코지할 것이 두려웠다”고 진술했다.

유씨는 재혼남 김모씨와 함께 딸을 살해한 혐의로 2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있었다.

유씨는 당초 재혼남 김씨의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했으나 전날 밤 유치장 관리인을 통해 “할 말이 있다”며 심야 조사를 요청했다. 이후 그동안 “딸의 죽음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던 입장을 번복하고 혐의 일체를 인정했다.

유씨는 재혼남 김씨와 지난달 27일 오후 6시30분쯤 전남 무안의 한 농로에서 중학생 딸 A(12)양을 살해하고 시신을 광주 동구 너릿재터널 인근 저수지에 유기하는 것을 도운 혐의를 받고 있다.

재혼남 김씨는 경찰조사 초기 단독범행이라고 했다가 경찰이 부부간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추궁하자 “의붓딸을 승용차 뒷자석에서 목졸라 살해할 당시 아내가 조수석에 앉아 생후 13개월 된 아들과 함께 이를 지켜봤다”고 밝혔다.

김씨는 또 “아내가 숨진 딸의 시신을 저수지에 버리고 왔을 때 ‘고생했다’며 자신을 다독였다”는 충격적 진술도 덧붙였다.

하지만 김씨 부부는 마대 자루와 노끈 등 범행 도구를 준비하고, 공중전화로 딸을 불러낸 계획적 범행을 언제부터 공모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다른 진술을 하고 있다.

경찰은 수사결과 재혼남 김씨가 의붓딸이 자신을 성범죄자로 지목하고 친부 등에게 고자질한 데 앙심을 품고 복수를 하기 위해 딸을 계획적으로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살해당한 여중생 A양은 계부에게 성추행을 당한 것도 모자라 친부에게는 자주 매를 맞는 등 신체적 학대를 당해온 정황이 드러났다.

친부모와 계부에게 신체적·성적 학대를 당하고 한 맺힌 짧은 생을 마치는 동안 12살 여중생이 기댈 곳은 이 세상에 전혀 없었던 셈이다.

불행한 삶을 마친 A양은 지난달 28일 오후 3시쯤 광주 동구 너릿재터널 인근 저수지에서 머리에 비닐봉지가 씌워지고 한쪽 발목에 떠오르지 않도록 무거운 벽돌을 담은 마대자루가 묶인 채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경찰은 A양 두 발목에 묶인 벽돌 마대 자루 중 하나가 풀리면서 수심이 얕은 저수지 수면 위로 처참한 주검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학창시절 추억 쌓기를 위한 수학여행을 불과 하루 앞두고 낯선 저수지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A양의 삶은 친부와 살 때도 자주 매를 맞는 등 고난의 연속이었다. 부모의 이혼 이후 친부와 잠시 함께 지낸 A양은 수시로 매를 드는 친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동보호 전문기관을 찾기도 했다.

친부를 떠나 2016년부터 광주 의붓아버지 집에서 생활하게 됐지만 A양은 이곳에서도 잦은 구타를 당하며 추운 겨울에 집에서 쫓겨난 적도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양의 조부모는 의붓아버지 김씨가 A양을 산으로 끌고 가서 목 졸라 죽이려고 한 적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친모와 의붓아버지가 다시 아동보호소로 보낸 A양은 지난해 목포 친부 집으로 돌아와야 했으나 계획적 범행을 피하지 못하고 미처 꽃피지 못한 12년간의 고단한 삶을 마감했다.

한편 전남 목포에 사는 친부는 지난 달 9일 경찰서를 찾아 A양의 의붓아버지 김모(39)씨를 성추행 혐의로 신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친부는 이혼한 아내인 유씨로부터 딸이 의붓아버지로부터 음란 동영상을 받거나 특정 신체 부위를 촬영해 보내라며 성희롱,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전해 듣고 격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이혼한 유씨에게 전화를 걸어 재혼남이 의붓딸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몹쓸 짓을 한 데 항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재혼남과 공모해 12살 중학생 딸을 살해한 혐의가 드러난 유씨는 2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았다.

살인 혐의로 긴급체포된 유씨는 이날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했지만 고개만 숙인 채 기자들의 질문에 침묵을 지켰다.

경찰 관계자는 “의붓아버지 김씨는 A양의 주검을 감추기 위해 트렁크에 시신을 실은 채 고향인 경북 문경까지 밤새 다녀오기도 했다”며 “장소를 물색하다가 마대 자루 2개에 벽돌을 가득 담아 발목에 묶은 시신을 재혼한 부인과 자주 갔던 저수지에 버린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