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세상] ADHD, 약물치료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들(1)

입력 2019-05-02 10:56

D는 초등학교 2학년 남자 아이다. 어린이집을 다닐 때부터 남달리 활발하고 산만했지만 ‘설마 주의력 결핍과잉 행동 장애(ADHD)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해 왔다.

입학 후에는 어려움이 차츰 더해졌고, 학습에도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해서 병원을 찾아 ADHD라는 진단을 받았다. 처음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학교생활에서의 어려움이 계속되자 약물치료를 시작하였다. 약을 먹자 아이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일단 학교에서 야단맞는 일이 거의 없었고 심지어 칭찬을 자주 받고 왔다. 학습 부진 아이로 낙인이 찍혔던 아이가 100점을 받아왔다. 친구들이 같이 D와 놀기를 피해, 비슷한 성향의 말썽꾸러기들과만 어울리던 아이가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린다.

이것만으로도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언뜻 보기엔 다른 아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특히 친구들과 놀 때 자세히 들여다 보니, 예전처럼 친구를 때리거나 폭력적인 건 아니지만 승부욕이 지나쳤다. 예를 들어 반 별 축구 경기에서 지게 되면 속상한 건 당연하겠지만 유난히 짜증을 내고 울기까지 하였다.

소소한 놀이나 게임에서도 유난히 지기 싫어하고 이기는 것에 집착하여 슬쩍 속임수를 쓰기도 하였다. 예전처럼 막무가내로 규칙을 어기는 것은 아니지만. 약을 먹기 전에는 자기 주장이 강하고 목소리가 너무 크고, 막무가내로 우기는 아이였지만 이제는 자기 주장을 해야 할 때 조차도 하지 못하였다. 엄마는 아이의 이런 모습이 안타까웠다. 너무 위축된 것이 안쓰러워 약을 끊어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약을 끊으면 금새 다시 예전처럼 학교에서 싸우고 오거나 야단을 맞고 왔다.

지난번 칼럼에서 얘기한 것처럼 ADHD에서 약물치료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영역이 매우 많지만, 약물치료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많다. D처럼 대인관계의 기술이 대표적 이다. 약물치료를 하면 충동성으로 인해 대인관계에서 보였던 문제는 많이 완화되지만 세밀한 사회 기술은 여전히 부족할 수 있다. 예컨대 눈치껏 상대 마음을 읽고 행동하지는 못한다. D처럼 지는 것을 우아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경우도 있다. 갈등이 생겼을 때 이를 조율하고, 적당한 선에서 자기 주장을 하는 것도 약물치료로 다 좋아 지진 않다.

ADHD가 있는 아동 들은 말주변이 없는 경우가 많다. 언어를 구사할 때 논리적이지 못하고 앞뒤 상황에 대한 설명이 없이 무턱대고 떠오르는 대로 말하니, 아는 것도 많고 창의적이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지만 상대가 잘 알아듣기 힘들다. 상대를 잘 설득할 수가 없으니 자기 주장을 포기 해버리기도 한다. 약물치료 전에는 생각 없이 말을 툭툭 뱉어버리고 거침없이 말했던 아이가 말하기 전에 먼저 생각을 하게 되고 걸러서 말하게 되므로 말 수도 다소 준다. 이런 모습이 때로는 ‘위축’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약물치료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이나 행동’을 자제시켜주는 효과는 있지만 바람직한 행동을 배우는 것은 또 사회기술 훈련이나 부모의 모델링과 같은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