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세난’에 보증상품 가입 급증…세입자 “왜 우리가?” 불만

입력 2019-05-01 00:20 수정 2019-05-01 00:20
국민일보 DB

#지난 8일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 충남 천안 등에 주택 270여 가구를 보유했던 임모씨는 세입자들로부터 형사고소를 당했다. 혐의는 사기 강제집행면탈죄였다. 임씨를 고소한 세입자들은 “역전세난에 처한 임씨가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기 위해 가족과 허위 채무를 만들어 집을 고의로 경매에 부쳤다”고 주장했다.

#충북 청주에서는 공동투자에 나섰던 갭투자자 6명이 소유한 아파트 121채가 경매로 나왔다. 경남 창원에서는 아파트 192채를 보유한 개인이 회생을 신청했다.

부동산 경기 악화로 지방을 중심으로 집값이 빠지면서 전세가가 매매가를 뛰어넘는 ‘깡통전세’가 속출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집주인의 파산 사례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주택 소유자들의 파산으로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거다. 불안감이 커진 임차인들에게 정부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이라는 안전망을 구축하라고 권유하고 있지만 임차인 측에서는 “억울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상품을 임차인이 아닌 임대인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직장 때문에 울산에서 전세로 거주하고 있는 김모(45)씨는 30일 “내 돈 내가 받겠다는데 왜 내 돈 주고 보증보험에 가입해야 하느냐”면서 “정부가 책임을 피하려고 임차인에게 보증상품에 가입하라는 식으로 부담을 지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세보증금을 보증한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반환보증 단독상품)이란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지급해야 하는 전세 보증금의 반환을 책임지는 보증이다.
이 상품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서울보증(SGI)이 취급하고 있다. 보증료를 내면 나중에 집주인이 보증금을 줄 수 없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HUG나 SGI로부터 대신 받을 수 있다. HUG와 SGI는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내주고 추후 집 주인에게 돌려 받게 된다.

임차인을 위한 안전망이라는 HUG와 SGI의 설명대로 최근 역전세, 깡통전세가 속출하면서 임차인들의 가입도 늘어나고 있다.
HUG에 따르면 2013년 451가구만 가입했던 이 상품을 지난해에는 무려 8만9351가구가 가입했다. 올해는 3월 말 현재 3만3311가구가 반환보증을 들었다.


보증료율이나 가입 가능 시점, 가입 한도 등에서 HUG와 SGI는 차이가 있다.
HUG의 보증료율은 아파트 0.128%, 그 외 주택은 0.154%다. SGI 보증료율은 이보다 조금 높다. 아파트 0.192%, 기타 주택 0.218%다. 보증료는 보증금액×보증료율×보증기간으로 산정한다. 전세 보증금 2억원인 아파트의 1년 보증 비용은 25만6000원에서 38만5000원이 된다.

가입 가능 시점도 다르다. HUG 상품은 전세 계약 기간의 2분의 1이 지나기 전까지 가입해야 한다. 2년으로 계약했다면 만 12개월이 지나기 전까지다. 전세 기간 1년을 남겨두고 가입했다면 보증료도 절반으로 줄이면서 전세보증금 반환도 100% 보장된다.
SGI의 가입 가능 기한은 1년 계약 때 만 5개월, 2년 계약 때 만 10개월 이전에 가입해야 한다.

가입 한도도 차이가 있다. HUG의 반환보증 상품은 전세보증금이 수도권은 7억원 이하, 비수도권은 5억원 이하일 때만 가입할 수 있다. SGI 상품은 아파트에 한해 가입 가능한 전세보증금 한도가 없다. 기타 주택은 보증 한도가 10억원이다.

■우리가 왜 내야 하나요
보증금 반환보증 상품이 임차인의 보증금을 보호해 준다는 점에서 임차인에게 고마운 제도인 것은 맞다. 하지만 임차인들은 임대인의 잘못으로 받지 못하는 자신의 보증금을 자기 돈 들여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보증금에 비해 가입금의 단위는 크지 않다. HUG의 경우 계약 기간에 상관없이 보증료율에 따라 가입금을 한 번만 내면 된다. 보증금이 2억원이면 25만6000원, 4억원이면 51만2000원이다. SGI는 전체 임대차 계약 기간에 대한 보증료를 내야 해 부담은 좀 더 크다. 보증금 2억원의 아파트를 1년 계약했다면 보증료는 38만5000원이지만 2년이면 두 배인 77만원이 된다.

이 과정에서 국토교통부와 HUG도 임대인들이 반환보증 상품에 의무 가입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이미 매입임대사업자의 경우에는 가입이 의무화돼 있다.
HUG 관계자는 “가령 임대사업자가 한 개 동을 모두 매입한 뒤 임대사업을 하면 보증상품에 가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갭투자를 목적으로 전국 곳곳에 산발적으로 주택을 구매한 임대사업자들까지 의무 가입시킬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앞서 세입자들이 고소·고발한 임씨의 경우도 비슷했다.

익명을 요청한 부동산 전문가는 “임대소득에 따른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사업자로 등록하지 않은 임대인들이 태반”이라며 “아예 계약서를 작성할 때 보증상품 가입 여부를 확인하는 걸 의무화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임대인들의 반발로 진행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