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태풍이 국회를 휩쓸고 간 30일,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일말의 정치적 이익을 보겠다고 우리 당을 한 쪽 이념으로 몰고 가려는 책동에 대해 강력히 경고한다”고 말했다. 패스트트랙 정국 내내 이어졌던 ‘지도부 흔들기’에 대해 정면 돌파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손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당을 진보와 보수 어느 한 쪽 이념으로 몰고 가려는 당내 움직임이 있어 우려스럽다”며 이같이 말했다.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을 비롯한 사법개혁 법안이 진통 끝에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지만 그 과정에서 태풍의 한복판에 있었던 바른미래당은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 ‘자유한국당 대 더불어민주당 연대’라는 유사 양당 대립 구도가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당은 민주당 쪽으로 묶이려는 세력과 이를 반대하는 세력으로 재편되며 내부전선이 선명해졌다.
패스트트랙 정국이 두 세력이 공존할 수 없음을 재확인하는 시간이었던 만큼 어느 한 쪽이 당권을 온전히 거머쥐기 전까지는 극한 대립이 반복되는 ‘엔드 게임’ 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정국 내내 민주당 연대 측과 보조를 맞추며 논의를 이어왔다. 한국당 제외 여야 4당의 공수처법 합의안을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자당 소속 특위 위원인 오신환·권은희 의원을 교체했을 때는 당내 반발이 폭발하기도 했다. 결국 권 의원이 새로 발의한 공수처법을 여야 4당 합의안과 함께 패스트트랙에 태우기로 결정하면서 당내 반발을 일시적으로 잠재웠다.
지도부가 같은 사·보임 당사자였던 오 의원은 제외하고 광주가 지역구인 권 의원 달래기만 선택한 것에 대해 호남 중진 의원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창당 주역인 바른정당계와 일부 ‘안철수계’ 인사들이 ‘손학규 체제’에 등을 돌린 상황에서 지도부가 호남 끌어안기를 통해 우군을 확보하고 전선 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당내 호남계 의원들은 현재 제3지대에 빅텐트를 쳐 민주평화당이든, 바른미래당이든, 민주당내 비문(비문재인)세력이든 다 함께 뭉쳐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라도 한국당과 거리를 유지하고 민주당이 주창하는 개혁 연대에 함께 묶여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 지도부의 정계개편 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당 관계자는 “지도부는 반개혁세력으로 낙인찍히는 상황을 여전히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패스트트랙 정국 내내 지도부와 각을 세운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과 일부 ‘안철수계’ 인사들은 손학규 체제 불신임 운동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바른미래당이 개혁보수·합리적 중도 가치를 중심으로 재편돼 한국당과 보수 주도권 경쟁을 벌이면 수도권과 중도·보수층에서 한국당을 대체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은 29일 사개특위에서 사법개혁안들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직후 모여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유승민 의원은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나 “참담하다. 불법 사·보임과 거짓말, 당론도 아닌데 당론으로 밀어붙인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지실 분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책임져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어 “손 대표를 포함해 지도부 전체에 그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형민 김용현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