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TV를 볼 때 눈을 찌푸리고 사진을 찍으면 고개를 숙인 채 눈을 치켜들고 째려보던 습관이 있던 A양(8)은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수업시간에 칠판 글씨가 잘 안 보인다고 칭얼대 부모는 꾀병을 의심했다. 하지만 A양이 안과에 진단받은 병명은 약시였다.
약시는 안과 정밀검사로는 특별한 이상이 없는데 시력표 검사를 하면 양쪽 눈 시력이 두 줄 이상 차이가 나고 안경을 써도 시력이 잘 나오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사시가 동반되는 경우가 많으며 만 8세 이후 발견하면 교정이 어려워져 심각한 시력장애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최근 유아의 TV, 스마트폰, PC 이용률이 늘면서 많은 아이들이 눈에 무리주는 환경에 쉽게 노출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소아 약시 환자가 매년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약시는 사시약시, 폐용약시, 굴절이상약시, 굴절부등약시, 기질약시 등 원인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사시가 약시의 원인인 경우를 ‘사시약시’라고 하며 4세 이전에 잘 생긴다. 사시는 양쪽 눈의 정렬 방향이 동일하지 않고 한쪽 눈이 상대적으로 외측 또는 내측으로 치우친 상태를 말한다. 사시가 있으면 각각의 눈에 물체가 맺히게 되는 부분이 달라 물체가 두개로 보이는 복시가 생길 수 있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눈의 가장 중심인 황반부의 기능을 억제시켜 한 눈에서 오는 시각정보를 무시하게 되고, 결국 많이 사용하는 눈의 시력은 정상적으로 발달하지만 억제된 눈의 시력은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해 그 기능이 떨어지게 된다.
폐용약시는 눈꺼풀처짐, 백내장, 각막혼탁 등 눈 안으로 빛이 정상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상황이 있을 때 발생하는 약시를 말한다. 소아의 경우 한쪽 눈 시력이 떨어지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적절한 조기검진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굴절이상약시는 근시 원시 난시 등의 굴절 이상이 심하게 있는 경우 발생하는 약시를 말한다. 활동이 주로 가까운 거리에 국한돼 있는 어린 소아는 근시보다는 먼 거리는 잘 보이나 가까운 곳이 흐리게 보이는 원시에서 약시가 더 잘 발생한다.
굴절부등약시는 양쪽 눈의 굴절력 차이 때문에 더 굴절 이상이 심한 눈에 약시가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양안의 굴절력 차이가 있는 경우를 굴절부등이라고 하며 이 경우 양안 망막상의 크기와 선명도가 다르기 때문에 융합이 불가능해 좋은 쪽 눈을 주로 사용하고 나쁜 쪽 눈의 정보는 무시하게 돼 약시가 발생하게 된다.
기질약시는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망막의 시신경 조직이나 시신경 경로의 특정 부분에 이상이 있어서 발생하는 약시다.
중앙대병원 안과 문남주 교수는 29일 “약시의 경우 가능한 일찍 발견하고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효과가 좋은데, 시력이 완성되는 취학 시기 이전에 치료할수록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서 “간혹 약시의 치료시기를 놓쳐 성인이 되어서까지 심각한 시력장애가 생기는 안타까운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고 말했다.
약시의 치료율은 만 4세에 발견하고 치료하면 95%이지만, 만 8세에는 완치율이 23%로 떨어지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만큼 빠른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아이는 자신의 시력이 좋은지 나쁜지를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부모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조기 발견과 치료를 위해서는 만 3세가 되면 안과에 가서 시력검사를 받도록 해야 하고 정기 검진과 지속적인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아이가 눈을 잘 맞추지 못하거나, 눈을 찌푸리거나 째려보며 사물을 보는 경우, 유난히 햇빛 등에 눈부심이 심하고, TV나 책을 가까이서 보려고 한다거나, 독서나 놀이에 오래 집중하지 못하고, 자주 넘어지는 등의 증상 가운데 1~2개 이상 보인다면 안과검진을 받아야 한다.
문 교수는 “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8세 이전에 가정에서 아이의 한쪽 눈을 가리고 관찰했을 때 안 보여서 눈가리개를 뗀다던지, 눈가리개 주변으로 보려고 한다든지, 눈앞에서 움직이는 물체를 따라 보지 못하면 약시를 의심해 보라”고 말했다.
약시 소견이 있는 경우 상대적으로 안 보이는 눈의 발달을 위해 약시의 원인을 교정하게 되는데, 우선 약시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눈꺼풀 처짐, 백내장 같은 기질적 이상을 치료하고 굴절이상은 안경을 사용하여 교정해 준다.
또 한쪽 눈에 약시가 있는 경우 정상 시력 눈의 ‘가림치료’를 통해 약시안의 시력 회복을 도모할 수 있다. 문 교수는 “전반적인 시력 발달이 완료되는 10세 이전에 안경 교정이나 가림치료를 권유하며 시기가 빠를수록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약시의 발생 및 시력 회복이 가능한 민감기가 7~8세 정도까지로 보고되고 있어 가능한 약시를 일찍 발견하고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효과가 좋으나, 8세 넘어서 시작한다고 해서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면서 “약시의 정도가 심하지 않을수록 가림치료의 효과가 크게 나타나기 때문에 8세 이상 소아라도 중등도 이상의 시력을 보이면서 치료에 잘 협조하는 경우 적극적인 가림치료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우리 아이, 이럴 때 ‘약시’ 의심
1.생후 6개월이 됐는데도 눈을 잘 맞추지 못한다.
2.눈을 심하게 부셔하거나 TV 볼 때 찡그리거나 고개를 숙인 채 치켜들고 본다.
3.사물을 볼 때 눈을 많이 찌푸리거나 다가가서 본다.
4.고개를 기울이거나 얼굴을 옆으로 돌려서 본다.
5.양쪽 또는 한쪽 눈꺼풀이 쳐져 있다.
6.눈을 자주 깜빡이거나 비빈다.
7.일정한 곳을 주시하지 못하고 시선이 고정되지 않는다.
8.한쪽 눈을 가리고 아이의 행동을 관찰했을 때 눈앞에 물체를 보지 못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