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재심, 71년 만에 광주지법 순천지원서 열려

입력 2019-04-29 17:11
광주지법 순천지원 전경. 국민일보DB

1948년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당한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재심 첫 재판이 29일 열렸다.

이날 광주지법 순천지원 제1형사부(김정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장모 씨 등 3명에 대한 내란 및 국권문란 사건 재심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재판부는 심리를 시작하기 전 10분 가까이 할애해 진실규명을 다짐하고 법률적 한계를 우려하는 입장을 밝혔다.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처형된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재심 첫 재판이 29일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열렸다. 사건 발생 71년 만이다.

이날 순천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김정아) 심리로 열린 첫 공판은 이 사건에 대한 입장 발표와 심리 계획, 변호인 및 검찰의 의견을 확인한 후 다음 기일을 정하는 공판준비기일로 진행됐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대한민국 국민이 반드시 풀고 가야 할 아픈 과거사의 일이며 건물과 운동장 등 아로새겨진 생생한 현장이 남아있고 유족들이 재심 청구한 지 8년의 지나는 등 너무나도 길었던 통한의 세월이었다”며 “재심 재판 전 대법원의 결정문을 정독하고 자세히 검토했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형사재판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절차와 증거도 없는 데다 사형선고를 두고 판결문조차 남아있지 않아 진실규명이 현행법률 상 얼마나 가능하고 희생자 유족들에 대한 책무를 위해 최선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 것인지 두려움이 앞선다”면서 “과거사가 제대로 정리되길 희망하고 이 재판이 희생자와 유족에게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재심청구인을 대표한 김진영 변호인은 “공소사실이 특정됐다고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죄명인 내란죄의 실체에 대한 판단이 있으면 명예회복에 대한 판결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며 “검사는 명예회복 공소 유지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요구했다.

김 변호인은 또 “재심청구인 3명 가운데 장씨 외에 2명이 재심 결정 후 사망했기 때문에 같이 재판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광주지검 순천지청 공판 검사는 “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재심이 진행되는 역사적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재심을 통해 과거의 진실이 밝혀지고 민간인 희생자의 억울함이 없도록 책임감 있게 재판에 임하겠다”면서 “검찰은 형사재판의 형사소송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사형선고를 받은 피고인이 어떠한 이유로 사형선고가 내려졌는지와 사형 선고가 내려진 이유가 정당한 것인지 등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고 사형선고의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면 정당했는지 그렇지 않은 지에 대한 것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면서 “사실을 알 수 있는 판결집행 명령서에 기소내용을 특정할 수 없지만 억울함이 해명되도록 자료 확보에 노력할 것이며 재판부도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도록 소송지휘를 해 달라”고 말했다.

재심 청구인 장경자씨는 “아버지가 빨갱이로 몰려 숨진 뒤 72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이 법정서 어머니의 명예를 비롯해 수많은 여순사건의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역사가 바로 서길 바란다”'면서 “그러나 유족들이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재판이 끝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날 재판은 당초 공판기일로 예고됐으나 공판준비기일로 진행됐으며, 다음 예정된 두 번째 재판도 공판준비기일로 진행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재판에 앞선 지난달 21일 고(故) 이모씨 등 3명의 재심 인용 결정에 대한 재항고 사건에서 재심 개시를 결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들 유족들은 군과 경찰이 고인을 불법 체포·감금한 뒤 사형을 선고했다며 2013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1심은 유족들의 신청을 받아들여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검찰 항고로 진행된 2심도 “과거사위 결정은 포괄적인 불법 체포·감금이 있었다는 취지에 불과해 구체적으로 이들에 대해 불법 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번째 공판은 오는 6월 24일 오후 2시 순천지원 형사중법정서 제1형사부 심리로 열린다.

한편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여수·순천 지역에 주둔하던 14연대 군인들이 제주 4·3사건을 진압하라는 이승만 대통령 지시를 거부하면서 발생했다.

당시 국군은 지역을 탈환한 뒤 반란군에 협조·가담했다는 이유로 민간인들을 내란죄로 군사재판에 넘겨 사형을 선고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조사를 통해 1948년 10월 말부터 1950년 2월까지 순천지역에서 민간인 438명이 군과 경찰에 자의적이고 무리하게 연행돼 살해당했다며 이들을 민간인 희생자로 확인했다.

순천=김영균 기자 ykk22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