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규모로 열리는 마라톤 대회가 잇단 차별논란에 휩싸였다. 마라톤 대회 조직위원회가 인종과 장애 등을 이유로 특정 선수들의 마라톤 대회 참가를 금지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이탈리아 북동부 항구도시 트리에스테에서 열리는 ‘트리에스테 러닝 페스티벌’ 조직위원회는 26일 다음 달 5일 열리는 하프 마라톤에 아프리카 선수들은 참가할 수 없다고 공지했다가 비판을 받자 뒤늦게 이 조치를 철회했다고 CNN방송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피비오 카리니 조직위원장은 “수준 높은 아프리카 선수들을 상대로 현재 이뤄지고 있는 착취에 제동을 걸기 위해 올해 대회는 유럽 선수들에게만 문호를 개방하기로 결정했다”며 “부도덕한 코치들이 경쟁자들을 탈락시키기 위해 아프리카 선수들에게 푼돈을 쥐여주고 대회에 참가시키는 등 이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세계 마라톤 최상위권은 케냐,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아프리카 선수 중 기록은 다른 나라 대표 선수보다 더 좋지만, 강력한 자국 경쟁자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한 선수들을 끌어들여 경쟁자를 탈락시키는 마라톤계의 관행을 지적한 것이다.
이 조치는 당장 반발에 부닥쳤다. 중도좌파 민주당 소속 정치인 마르코 푸르파로는 “나치즘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1936년에 히틀러도 하지 않던 짓”이라며 “역사를 퇴행시키려는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맞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포퓰리즘 연정에서 스포츠 업무를 맡는 잔카를로 조르제티 정무장관도 “아프리카 선수들을 배제하는 것은 잘못됐다”며 “이것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조직위원회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카리니 위원장은 “기존 공지와는 달리 아프리카 선수들도 대회에 초청할 것”이라면서도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제기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인종차별 때문이 아니라 마라톤계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이번 조치를 내렸다는 것이다.
영국 런던마라톤에서도 뇌성마비와 간질을 앓는 21세 남성 애런 커의 대회 참가 논란을 둘러싸고 차별시비가 불거졌다. 애런의 가족들은 그의 휠체어를 밀며 함께 뛰는 방식으로 35개의 대회에서 완주했다. 하지만 런던마라톤은 ‘보조주자’의 도움을 받은 완주는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선수들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까지는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전진할 때는 도움을 받을 수 없도록 규정했다고 해명했다. 정작 IAAF는 아론이 대회조직위원회 재량에 따라 순위 경쟁과 상관없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회조직위원회가 애런의 대회 참가를 끝내 거부하면서 비난이 쏟아졌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