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보좌진이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총알받이’로 앞세워진 고충을 익명 게시판에 투고했다. 이 게시판은 국회 내부 전산망을 이용해야 확인할 수 있는 문구를 인증하는 방식으로 ‘내부자’를 확인하고 있다.
게시판은 ‘여의도 옆 대나무숲’ 페이스북 계정.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의원실 보좌진의 고충이 적힌 익명의 투고는 지난 28일 오후 5시57분 이 계정에서 ‘1133번째 외침’으로 작성됐다. 당적을 확인할 수 없지만, ‘직원 인증’은 표시됐다.
투고자는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이 있다. 영감(의원)님들 싸움에 보좌진 등만 터지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며 “우리 보좌진도 의지를 갖고 당과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게 옳다고 본다. 하지만 몸싸움, 고성, 욕설의 선두에 우리 보좌진이 있다. 나중에 ‘몸빵’(몸으로 막은)한 우리만 수사·재판을 받고 빨간줄(전과기록)이 생기는 건 아닌지 가족들은 매일같이 걱정한다”고 적었다.
이어 “총선이 1년 남았다. 앞으로 내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사실이다. 동료 보좌진과 싸우고 집에 가면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모쪼록 영감님들이 우리 보좌진을 생각한다면 정치력을 보여 달라. 정 싸워야 하는 상황이면 보좌진 뒤에 숨는 몸싸움은 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이 계정은 국회 컴퓨터 화면에서 왼쪽 하단 문구 가운데 ‘사용자 변경시 OOOOOOOOO로 연락바랍니다’의 공란 9글자를 채우는 방식으로 투고자의 국회 소속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이 인증을 통과하지 못해도 글을 투고할 수 있지만 ‘직원 미인증’으로 표시된다. 이 계정은 “내부인을 가장한 악성 투고를 막을 목적의 절차”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야가 국회 발의 안건의 신속한 처리 지정, 이른바 패스트트랙을 놓고 대치하는 상황에서 의원실 보좌진과 당직자는 점거 농성과 저지에 동원되고 있다. 이 틈에 국민 여론은 양분됐다. ‘한국당 해산’을 주장한 청와대 국민청원은 3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고, 반대 진영은 ‘민주당 해산’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투고자의 소속은 글의 맥락상 국회를 점거했던 자유한국당인지, 이를 저지할 목적으로 대치했던 더불어민주당과 그밖의 정당 소속인지 알 수는 없다. 한국당 의원들에게 감금됐던 바른미래당 의원실 소속일 가능성도 있다. 투고자는 “국민도 ‘보좌진은 비켜라, 우리가 나선다’고 말하는 의원님이 있으면 뽑아 달라”고 호소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