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루’ 든 나경원, 판사 출신 엘리트 정치인에서 ‘투사’로

입력 2019-04-29 04:00 수정 2019-04-29 04:00


선거제도 개편·검찰 개혁 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두고 여야 간 극한의 대치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투사 이미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김정은 수석대변인’과 같은 강경 발언으로 ‘나다르크’라는 별명을 얻더니 패스트트랙 국면에선 몸싸움도 불사하며 판사 출신 귀족 정치인의 꼬리표도 떼는 모양새다. 당 내에서는 야당 원내대표다운 야성을 보여줬다는 호평이 나오는 가운데 잇따른 불통·강성 노선으로 여야 협상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국당은 지난주 내내 나 대표를 총사령관으로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공세를 막아내는 데 총력전을 펼쳤다. 나 대표는 일찍이 소속 의원들을 패스트트랙 길목에 배치하고 경계 근무를 서게 해 여권의 기습에 대비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회의가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회의실을 점거하고, 법률안을 제출받는 국회 의안과의 출입문도 닫아걸었다. 한국당 의원들은 순번을 정해가며 24시간 경계 태세를 구축했고 나 대표가 이를 수시로 점검하면서 여야 4당은 번번이 빈손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나 대표 본인도 사령관이자 전투원으로서 패스트트랙 저지 투쟁에 앞장섰다. 그는 여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을 의안과에 접수하려던 25일 밤, 의원들과 보좌진들이 만든 인간 바리케이드 안에 들어가 최후의 보루를 자처했다. 의안과 출입문 앞에 선 나 대표는 “독재 타도, 헌법 수호” 구호를 외치고, 때로는 애국가를 부르면서 몸싸움을 벌이는 의원들과 보좌진들을 독려했다. 26일에는 사개특위 회의장 앞에서 동료 의원들과 스크럼을 짜고 드러누워 민주당 의원들의 발길을 되돌리게 했다.



‘여야 대치 상황에서 빼앗은 것’이라며 ‘빠루(쇠 지렛대)’를 쥐고 등장한 모습도 강경한 이미지를 더하는 데 한 몫 했다.

나 대표가 원내대표에 당선됐을 때만 하더라도 그의 ‘투쟁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았다. 서울대 법대·판사 출신이라는 이력과 여성 정치인이라는 꼬리표 탓에, 몸 사리지 않는 투쟁과는 거리가 멀 것이란 관측이 주를 이뤘다. ‘간헐적 단식 투쟁’ 논란과 각종 대응특위 남발로 “전선만 확대하고, 실속은 얻지 못한다”는 불만도 있었다.

하지만 나 대표가 대여투쟁의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야당 원내대표서의 입지를 확실하게 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26일 밤 비공개 의원총회 당시, 밤샘 농성 인원을 구하는 나 대표를 두고 자원자가 속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한국당 의원은 “하루에 30분도 자지 않는 나 대표의 모습에 의원들도 투쟁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고 말했다.

잇따른 강경 투쟁으로 얻어진 강성·불통 이미지는 부담이다.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하는 운용의 묘 없이 반대만 일삼다 보니 꼬인 정국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당 관계자는 “정국을 푸는 것도 원내대표의 역할”이라며 “나 대표가 너무 강하게만 나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했다.

심우삼 기자 s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