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과 감금, 폭행과 거짓말, 4부작 ‘국회 막장 드라마’

입력 2019-04-27 12:54 수정 2019-04-30 01:33


국회의원 주연, 여의도 국회의사당 배경의 ‘막장 드라마’가 이번주 내내 방영됐습니다. 범여권과 자유한국당이 선거제도 개편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두고 난장을 벌인 겁니다. 상대를 속이기 위한 거짓말이 난무했고, 배신감을 호소하는 인물들이 속출했습니다. 고성과 욕설, 셀 수 없이 많은 육탄전 속에 의원들이 동료 의원을 감금하는 촌극까지 빚어졌습니다. 국회의장을 둘러싼 성추행 논란과 잇따른 고소·고발은 드라마의 ‘막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여권이 선거제도 개편안과 검찰 개혁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우는 데 실패하면서 국회발 막장 드라마는 다음주 시즌2로 이어질 전망입니다. ‘액기스’를 놓친 시청자들을 위해 국민일보가 이번주 국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요약해봤습니다.

◆프롤로그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22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신설·검경 수사권 조정을 내용으로 하는 검찰 개혁법들을 패스트트랙에 태우기로 잠정 합의했습니다. 한국당은 노숙 농성을 감행하며 반발했고 찬성·반대파가 뒤섞인 바른미래당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여야 4당이 처리 시한으로 못 박은 날짜는 25일. 4일간의 막장드라마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1화 : 사·보임을 둘러싼 거짓말과 배신 논란



첫 화의 주인공은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와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바른정당계 의원들입니다.

시작은 이렇습니다. 여야 4당은 23일 일제히 의원총회를 열고 패스트트랙 합의안을 추인하는 절차에 돌입했습니다. 그런데 일사천리로 추인을 마무리한 다른 당과 달리 바른미래당은 진통을 겪었습니다.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패스트트랙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진통 끝에 표결을 한 결과 찬성 12표 반대 11표가 나왔습니다. 추인에는 성공했지만 당론 채택은 불발된 반쪽짜리 표결이었습니다. 결국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소속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이 당의 추인 결과와 상관없이 공수처법의 패스트트랙을 반대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했습니다. 공수처법의 패스트트랙 지정은 사개특위 위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 하기 때문에 오 의원이 반대하면 여야 합의가 무위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때부터 ‘사·보임’을 둘러싼 배신의 드라마가 펼쳐지게 되는데요. 김관영 원내대표와 지도부는 24일 오 의원을 사개특위 위원에서 사임시키고, 찬성표를 던질 채이배 의원을 보임하는 사·보임을 단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유 의원은 “김 원내대표가 사·보임하지 않겠다 약속했다”고 했고, 김 원내대표는 “그런 적 없다”고 반박하면서 양측 간에 진실공방이 벌어졌습니다.

급기야 바른정당계 의원들은 배신감을 호소하며 집단 행동에도 돌입합니다. 지도부의 사·보임 요청서 제출을 막기 위해 접수처인 국회 의사과를 점거한 겁니다. 지도부 비판을 자제해온 유 의원도 “손학규 당 대표, 김 원내대표는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며 사퇴를 촉구했습니다.

◆2화 : 한국당 등판, 이상하게 흘러가는 이야기

이런 가운데 한국당의 등판으로 이야기는 잠시 샛길로 빠집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공수처 신설에 모두 부정적이었던 한국당은 사·보임 저지를 위해 허가권자인 문희상 국회의장을 항의방문합니다. 문 의장이 바른미래당의 사보임을 허용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수십여명의 한국당 의원들이 국회의장실로 몰려가 문 의장을 둘러쌌습니다. 국회법에 따라 바른미래당의 사·보임은 위법이라는 한국당과 할 수 있다는 문 의장 간에 설전이 오고갔습니다.






이은재 의원이 문 의장을 향해 “사퇴하세요”를 외치면서 분위기는 한층 험악해졌고, 문 의장은 “이게 대한민국 국회냐”면서 울부짖었습니다. 사퇴 논쟁은 자리를 피하려는 문 의장과 이를 막으려는 한국당 의원들 간에 물리적 충돌로 비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문 의장을 막아선 임이자 의원과 문 의장 간에 신체적 접촉이 일어나 초유의 ‘성추행’ 논란까지 빚어집니다. 한국당 여성 의원들과 여성 당직자·보좌진들은 백장미를 들고 문 의장의 성추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임 의원은 문 의장을 성추행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습니다. 충격을 호소하며 병원에 입원한 문 의장은 병세가 악화돼 현재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3화 : 감금당한 채이배


사보임을 둘러싼 진실공방에서 성추행 논란까지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이어온 드라마는 첩보물과 액션물로 장르 변환을 시도합니다.

바른미래당 지도부는 25일 사·보임 요청서를 팩스를 통해 의사과에 제출합니다. 허를 찔린 바른정당계 의원들은 병상에 있는 문 의장을 설득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지만 문 의장은 만남을 거부했습니다.

사·보임 요청서를 손에 쥔 국회 의사국장은 의원들을 피해 문 의장과 접선했습니다. 문 의장은 바른미래당의 사·보임 요청서에 사인하며 ‘병상결재’를 강행했고, 의사국장은 뒷문을 통해 유유히 병원을 빠져나갔습니다.






사보임이 허용될 것에 대비해 한국당 의원들은 오전 9시부터 채 의원실을 점거했습니다. 채 의원이 사개특위 회의에 참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열 명이 넘는 한국당 의원들이 소파와 의자를 문 앞에 놓고 채 의원이 나가는 것을 막아섰습니다.

채 의원은 바깥쪽 창문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기자들에게 감금상태라고 전했습니다. 채 의원의 신고로 경찰과 소방 인력까지 충돌해 현장은 흡사 ‘인질극 현장’과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결국 채 의원이 “창문을 깨서라도 나가겠다”고 배수진을 치면서 한국당 의원들이 물러섰습니다. 무려 6시간에 걸친 감금 끝에 채 의원은 사개특위 회의장으로 향했습니다.

◆4화 : 또 한 번의 사보임, 전쟁터 된 국회 7층


이번 화에서 국회는 육탄전을 벌이며 막장의 종지부를 찍습니다.

채 의원이 의원실에 감금당하는 동안, 양당(민주당·바른미래당)의 사개특위 위원들과 원내대표는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검찰 개혁법안의 최종 조율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탈출한 채 의원도 뒤늦게 합류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번의 반전이 일어납니다. 채 의원에 앞서 회의장에 들어가 있었던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이 사개특위 위원에서 빠지고, 임재훈 의원이 보임되는 두 번째 사보임이 이뤄졌습니다. 권 의원이 여야 4당이 합의한 공수처법에 이견을 나타내자 지도부가 초강수를 둔 겁니다. 수개월 동안 검찰 개혁 법안을 논의했던 의원들은 빠지고, 처음으로 회의에 참여하는 의원들이 마무리 작업과 표결에 참여하게 되는 우수꽝스러운 상황이 됐습니다.

한국당은 '날치기'라며 즉각 반발했습니다. 이어 발의된 법안이 국회에 접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접수처인 국회 7층 ‘의안과’에 모든 당력을 집중시켰습니다.




네 명의 한국당 의원들이 일찍이 의안과 안에 들어가 진지를 구축했습니다. 복사기·TV 등 집기를 동원해 출입문을 봉쇄했습니다. 한국당은 당직자와 보좌진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려 의안과 앞에 인간 바리케이드를 구축했습니다.

법안을 접수하려는 민주당 세력과 이를 저지하려는 한국당 세력 간에 몸싸움이 이어졌습니다. 충돌이 계속되자 국회 의안과에는 경호권까지 발동됐습니다. 국회의장의 경호권 행사는 전두환 정권 이후 33년 만에 있는 일입니다. 여야 싸움에 국회 방호인력까지 가세하며 현장은 그야말로 ‘무법 지대’가 됐습니다.

대치는 밤새 이어졌습니다. 이날 오후 11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회의가 열릴 것으로 알려진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실 앞에서는 작은 소동도 벌어졌습니다. 다음은 회의장을 막아선 한국당 측과 회의를 강행하려는 여권 사이에 오간 말들입니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 “(한국당 관계자들 향해) 여기 가담해 불법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을 처벌하지 못하면 한국은 다시 박정희, 전두환 시대로 돌아간다. 박 전 대통령 DNA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철저하게 채증해서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전희경 한국당 의원 “당신들이 만든 김정은 시대 막으려고 하는 거야. 부끄러운줄 아세요”

이정미 정의당 원내대표 “대꾸하지마”

전희경 의원 “대꾸를 못하겠죠. 연좌하는 모습이 비장해보입니까?”

기동민 민주당 의원 “2011년도에 국회에서 막아섰다가 벌금 400만 원 받았어. (벌금형 받을 때)깨닫게 될 거다”

◆시즌2 결정된 국회 막장 드라마



26일 법안 접수에 성공한 민주당이 한국당의 총력전 속에 가까스로 사개특위 회의를 열었지만, 정족수가 부족해 표결에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논의할 정개특위 전체회의는 한국당의 저지 속에 열리지도 못했습니다.

고소·고발전도 잇따랐습니다. 민주당은 나경원 원내대표와 이주영 국회부의장을 포함해 18명의 한국당 의원을 국회선진화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한국당은 문 의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발한 데 이어 국회 윤리위에 제소하며 맞불을 놓았습니다. 바른정당계 의원들도 당 지도부의 사보임 결정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청구와 효력정치 가처분청구서를 냈습니다.

여야가 주말간 휴전에 들어간 가운데 ‘몸빵’을 불사하는 한국당과 이를 뚫고 패스트트랙을 강행하려는 여야 4당의 막장극은 다음주에도 계속될 전망입니다.

심우삼 기자 s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