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러 정상회담의 최대 승자가 됐다. 해외 언론은 푸틴 대통령이 최근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여지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25일(현지시간) 북·러 정상회담과 관련해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푸틴 대통령 같은 세계적인 지도자를 만남으로써 하노이에서 개최됐던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구겨졌던 체면을 세울 기회를 가졌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전날 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핵무기 포기를 고려하기 위해서는 미국만의 약속이 아닌 북한의 안보와 주권 유지를 위한 국제적인 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향후 북한 비핵화를 위한 6자 회담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체제 보장 이슈를 놓고 미국을 압박함으로써 북한에 힘을 실어줬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북·미대화의 교착 상황에서 중국 이외에 러시아라는 후원자가 있음을 미국에 과시하는 효과를 거둔 셈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이번에 북·러 관계를 과거의 혈맹 수준으로 복원함으로써 실질적인 지원을 받으려는 계획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의전만 보더라도 환영식 행사도 조촐했고, 도착 당일 환영 만찬을 생략한 것도 이례적이다.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 전 모두발언에서 “두 나라 인민은 일찍이 지난 세기 항일대전의 공동의 투쟁 속에서 전우의 정으로 굳게 결합했으며 (소련군) 장병들은 조선의 해방을 위해 자신들의 피를 아낌없이 바쳤다”며 양국의 끈끈한 관계를 강조했다.
이에 비해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지원사격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말의 성찬’에 불과했다고 미국 언론은 지적했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은 2011년 12월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처음 열린 것이지만 러시아의 경우 푸틴 대통령 존재감 과시에 초점을 맞춘 듯한 모습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유엔 제재로 고통을 겪고 있는 북한 경제에 대한 지원책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은 없었다”면서 “북·러 정상회담은 양국의 관계를 더욱 긴밀히 한다는 원론적인 수준의 말잔치만 했을 뿐 특별한 성과는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실제로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이나 합의문이 나오지는 않았다. 게다가 푸틴 대통령 혼자 기자회견에 나왔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는 것이 유사한 입장이고, 핵 비확산 문제에 대해서도 입장이 같다”고 밝혔다. 6자회담은 중장기적으로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포석을 미리 깔아둔 것으로 현재로서는 러시아가 미국의 대북 제재를 중단시킬 뜻이 없다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CNN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은 중요한 외교적 브로커로 자리매김했다. 정상회담이 계획대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크렘린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