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 ‘동양평화’ 정신, 최선을 다하는 조화로운 삶 아닐까요?

입력 2019-04-24 15:52 수정 2019-04-24 16:21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때는 1909년. 그는 서른 살의 청년이었고 이듬해 순국했다.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2009년 초연된 창작 뮤지컬 ‘영웅’이 10주년을 맞았다. 투사로 살아온 안 의사의 마지막 1년, 동시에 그가 겪은 인간적인 고뇌를 담아낸 이 작품이 10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건 관객들의 뜨거운 성원 때문이 아니었을까. 전국 순회 공연 준비에 여념이 없는 뮤지컬 ‘영웅’의 주연배우 양준모(39)씨를 최근 서울 종로구 이화장길 동숭교회 카페에서 만났다.

△뮤지컬 ‘영웅’에서 10년 간 안중근 역할을 연기하셨는데 어떤 점을 배우셨나요?

-우리는 일반인이 하지 못한 비범한 행동을 한 사람을 영웅이라고 합니다. 일상생활에 접목시켜서 볼 때 이 시대의 영웅은 누구일까요? ‘영웅’에 나오는 ‘동양평화’ 장면을 보면 안중근 의사가 동양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남기세요. 그분의 뜻처럼 서로 인정하고 각자 맡은 자리에서 그것을 최선을 다할 때 영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안중근 장군님에게는 유동화라는 동지가 있어요. ‘나라를 잃은 젊은이는 일찍 철이 든다’는 그의 대사가 나옵니다. 장군님의 역사를 보면 어릴 땐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하셨어요. 상남자다운 성격이셨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나랏일을 하신 분들이었고요. 동학농민 운동의 반대편에 서서 싸우는 역할을 하셨어요. 정봉준과 부딪치는 부분도 있었죠.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겼을 때 하나의 마음으로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우셨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생각해요. 힘들 때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 하나 되는 마음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포털에서는 영상이 안 보일 수도 있습니다. 국민일보 홈페이지나 유튜브에서 미션라이프를 검색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영웅' 중 '누가 죄인인가'의 한 장면. 에이콤 제공

△처음 이 작품 제의를 받았을 때 부담되진 않으셨나요?

-부담이라기보다는 영광이었습니다. 초연 때 제의를 받았고 재연 때부터 참여했어요. 당시 일반인이 아는 안중근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밖에 몰랐어요. 이분을 알고 공부할수록 ‘하나님의 사람이었구나’를 느꼈어요. 2010년 처음 맡았을 때 안중근 의사가 일제에 의해 잡힌 나이와 같았어요. 30살에 연기하고 31세로 넘어가는 시기였죠. 역사적으로 친구의 마음을 바라보고 연기할 때 새롭게 다가왔어요. 아직까지 그 나이에 안중근 역을 맡은 배우는 없어요. 그 나이가 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이 있거든요.

-100년 전 30대와 지금 30대는 달라요. 사회적 지위 자체가 달랐어요. 그때 30대는 지금 50대처럼 사회를 움직이는 시기였죠. 제가 100년 전 그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했고요. 지금은 이해가 돼요. 3·1운동과 독립운동을 한 이들 중 크리스천이 많습니다. 그분들이 실천하신 걸 보면 결국 성경에서 말하는 것이자 신앙의 목표인 ‘이웃 사랑, 나라 사랑’이 됩니다.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유언이 담긴 '동양평화' 장면. 에이콤 제공

△안중근 의사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장군님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아들에게 보낸 옥중편지를 보면 뭉클합니다. 개인적으로 올해 이런 해석을 해보기도 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이 이렇게 행동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안중근 장군님’이라고 부릅니다. 군인의 모습이 더 좋기 때문이지요. 그분이 살지 못한 10년을 살고 있어요. 그러면서 독립운동가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가장 먼저 듭니다. 모든 배우들은 그분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갖고 무대에서 연기를 합니다.

-그분이 살지 못한 십년을 살면서 많은 걸 느껴요. 아직도 우리나라는 아직도 하나되지 못했죠. 그분들의 뜻이 안 이뤄지는 것을 보면 죄송한 마음이 들고요. 이 나라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실까 싶어요.


△기억에 남는 명장면은요?

-‘누가 죄인인가’ 외에 ‘동양평화’ 장면을 꼽고 싶어요. 교도소에서 미완성된 유언을 남기셨죠. ‘나는 두 주먹을 쥐고 이토를 쐈지만 아들의 두 손은 기도하는 손이 되길 바란다’는 대사가 있어요. 그 정신이 바로 ‘동양평화’입니다. 이 장면을 연기할 때 관객 한명 한명을 쳐다봐요. 지금 시대에서 이 정신을 계승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분의 메시지처럼 각자 자리에서 맡은 바 충실하며 조화롭게 사는 것이요. 그게 지켜지면 아주 이상적인 세상이 되겠죠.

-10년 동안 창작 뮤지컬이 거의 매년 진행됐는데 관객들의 반응이 없으면 불가능했어요. 우리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공감해주신 것입니다. 건강한 나라 사랑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성악 전공자셨는데 뮤지컬 배우로 전향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2005년 평양에서 열린 가극 ‘금강’ 공연 이후입니다. 당시 동학군 역할을 맡았어요. 무대에 오르기 전 한 북한 사람이 ‘관객들이 재밌어도 웃진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어요. 그러나 관객들은 울고 웃으며 뜨겁게 반응해줬어요. 그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장르가 뮤지컬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뮤지컬 ‘영웅’을 통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긴다면 이보다 보람된 일이 있을까요. 관객 이전에 동료, 동료 이전에 가족, 가족 이전에 하나님께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그런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관객 이전에 동료, 동료 이전에 가족, 가족 이전에 하나님께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뮤지컬 '영웅'의 '그날을 기약하며' 장면. 에이콤 제공

△믿음생활을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해요.

-모태신앙이고 부모님이 오랫동안 평신도 생활을 하셨죠. 교회 개척을 하셔서 사역을 하셨고요. 와이프 집안에서도 선교하는 등 기본적으로 신앙 배경이 있는 환경에 있습니다. 지금 제 인생에서 가장 인격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기 같아요. 많은 작품 중 대부분 기도 모임이 있어요. 지금 영웅팀에서도 20여명이 매일 한 시간 큐티하고 기도하지요. 주일에 교회 가기 어려운데 극장을 교회 삼아 예배를 드립니다.

-매일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닌 사람이잖아요. 극장 공연을 예배로 삼아 하루 하루를 삽니다. 우리 예배의 모습을 통해 누군가에게 마음의 씨앗이 뿌려지길 기도합니다. 이외에도 10년 된 성경공부팀이 있어요. 매주 주일 저녁에 모여서 말씀을 나누고요. 문화계에서 크리스천으로서 선한 영향을 어떻게 끼칠 것인가에 대해 공부하고 책을 읽습니다. 저에게 든든한 동역자들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요?

-매 작품 최선을 다하는데 특별히 신경쓰는 날이 있어요. 관객이 중․고등학생들일 때요. 입체화된 역사공부가 되기 때문이죠. 군인들도 이 작품을 많이 봐주십니다. 군인들이 제일 존경하는 인물이 안중근 의사라고 하더군요. 이분들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을 주고 싶습니다. 이런 마음이 있으니 대충할 수 없죠. 정성을 다해 준비하면 관객들이 분명히 알 것입니다.

△연기 외에 다른 활동을 하시는 게 있으신가요?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15년 전부터 소년원 등에서 뮤지컬을 가르치면서 재능 나눔도 하고 있죠. 얼마 전 기아대책 청소년봉사단에서 강의했어요. 자신의 기쁨을 위해 봉사하면 한계가 있다고 조언했죠.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는데 감사한 마음으로 봉사하고 그 중심에 예수님이 있어야 한다고요. 기회 있을 때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도와주고 후배들을 이끌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공연 전 배우들과 기도하는 모습. 양준모씨 제공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시면?

-전국 순회 일정이 곧 시작됩니다. 저희 공연을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마음을 위해 꼭 봐주셨으면 합니다. 특히 크리스천이면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기도와 피로 세워진 이 나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영웅’의 첫 장면은 안 의사 등이 손가락을 자르며 결의를 다지는 ‘12인 단지 동맹’으로 시작돼요. 독립운동가 12명 중 역사적으로 밝혀진 분은 서너 명밖에 없어요. 이름 없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들을 밝히고 그분들의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 우리의 할 일 아닐까요?”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