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4당이 합의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합의안 추인을 계기로 바른미래당의 분열 움직임이 가속화하는 분위기다. 23일 약 4시간의 격론 끝에 겨우 합의안을 추인하긴 했지만 국민의당 출신 의원들과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의 표결 결과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이날 오전 10시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의원총회에는 의원 29명 가운데 당 활동을 하지 않는 박선숙 박주현 이상돈 장정숙 의원과 개인 사정으로 불참한 박주선 의원, 당원권 정지 징계를 받은 이언주 의원을 제외한 23명이 참석했다.
의총에서는 선거제 개혁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법 등 패스트트랙 합의안 추인을 놓고 시작 전부터 설전이 오갔다. 지상욱 의원은 김관영 원내대표를 겨냥해 “저는 오늘로서 김 원내대표가 바른미래당의 원내대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의원들 뜻을 대변하지 않을뿐 아니라 당론으로 정해진 공수처 사안을 갖고 가서 버리고 더불어민주당 안을 받아왔다”고 비판했다. 김 원내대표는 지 의원의 발언이 계속되자 “발언권을 얻고 말하라”며 냉랭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비공개로 열린 의총 결과는 합의안 찬성 12표, 반대 11표로 나왔다. 국민의당 출신들이 대거 찬성표를 던진 반면, 바른정당계 의원들은 일제히 반대표를 행사했다.
표결 방식에서도 입장이 엇갈렸다. 합의안 찬성파들은 과반 표결을 주장했지만 반대파 의원들은 당헌 54조의 당론 규정을 근거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표결 방식을 정하기 위한 표결에서 ‘과반 표결’로 결론이 난 뒤 합의안 추인은 찬성파의 1표차 승리로 끝났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듯 김 원내대표는 합의안 추인 직후 “오늘은 적어도 당헌상의 의사결정은 아니었다”며 “당론이 아니라 당의 입장이 정해졌다고 표현하겠다”고 말했다.
손학규 대표의 거취를 놓고 내홍이 커지고 있는 바른미래당은 이번 패스트트랙 합의안 추인으로 당내 분열이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유승민 의원은 표결 직후 “이런 식으로 당의 의사결정이 된 데 대해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다고 생각한다”며 “당의 의사결정까지도 한표 차 표결로 해야되는 당의 현실에 자괴감이 든다. 앞으로 당 진로에 대해 동지들과 함께 심각하게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언주 의원은 패스트트랙 합의안이 추인된 직후 탈당 기자회견을 열고 “당원권 정지라는 지도부의 꼼수로 12대 11이라는 표결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참담한 분노를 느낀다”며 “어떤 경우라도 좌파 독재의 문을 열어주는 패스트트랙을 결사 저지하겠다”고 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