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역할로 인기를 끈 코미디언이 우크라이나 대선 결선투표에서 재선에 나선 현직 대통령을 3배 가까운 득표율 차이로 꺾고 압승을 눈앞에 두고 있다. TV드라마가 현실이 된 것이다.
AP통신은 출구조사 결과, 코미디언 출신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1) 후보가 73.2%를 득표해 25.3%를 득표한 페트로 포로셴코(53) 현 대통령에게 승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출구조사는 키예프 국제사회연구소와 라줌코프센터가 함께 발표했다.
승리가 유력해지자 젤렌스키 후보는 지지자들을 향해 “결코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포로셴코 대통령도 패배를 인정하고 대통령직 인계에 협조하겠다고 발표했다.
젤렌스키 후보는 정치 경험이 전무한 생짜 신인으로 TV드라마 ‘국민의 종(Servant of the People)’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동영상이 유포된 뒤 대통령이 되는 고교 교사 역할을 맡아 큰 인기를 끌었다. 극 중에서 역사 교사로 등장하는 그는 욕설을 섞어 정부의 부정부패를 격렬하게 비판하는데 이를 한 학생이 휴대전화로 몰래 촬영한 뒤 인터넷에 올린다. 이 동영상은 온라인상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대선에까지 출마해 대통령이 된 교사는 부패한 정치인과 재벌을 상대로 개혁 정치를 펼친다는 내용이다.
드라마 속에서 대통령이 된 젤렌스키는 취임 연설에서 “정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한가지는 안다. 나중에 아이들과 여러분 모두를 볼 때 부끄럽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해 박수를 받는다.
젤렌스키 후보의 급부상 뒤에는 경쟁자인 현직 포로셴코 대통령 등 기성 정치권에 대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불만과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젤렌스키 후보가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화끈한 개혁을 이끌어갈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정치 신인 젤렌스키 후보의 배후에 포로셴코 현 대통령의 라이벌인 금융재벌 이고르 콜로모이스키가 있다는 분석이 많다. 실제 젤렌스키는 지난해 12월 31일 콜로모이스키가 소유한 방송 ‘1+1’을 통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번 대선이 ‘개혁 대 부패’보다는 우크라이나 최대 재벌 중 한명인 콜로모이스키와 기업가 출신의 포로셴코 대통령 간 대결이자 세력 다툼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우크라이나 최대 은행 프리바트방크 소유주였던 콜로모이스키는 포로셴코 정부가 은행을 국유화한 뒤 현재 이스라엘에서 망명생활 중이다.
앞서 지난달 31일 치러진 1차 투표에서 젤렌스키 후보는 30.2%를 득표해 16.0%를 받은 포로셴코 대통령을 여유 있게 앞질렀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