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450주년 재현’, 21일 도산서원 도착한다

입력 2019-04-19 16:10
지난 18일 소백산 죽령 옛길을 올라가는 재현단과 일반 참가자들.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제공

【1569년 음력 3월, 퇴계 이황 선생(1501~1570)은 선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뜻한 바를 위해 어렵사리 허락을 받아 생애 마지막으로 경북 안동 도산으로 내려갔다. 벼슬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니기에 물러나 더욱 가치있는 일에 힘쓰고자 한 선생의 오랜 바람이었다. 퇴계선생은 마지막 1년 9개월 동안 배우러온 사람들에게 자상한 가르침과 귀한 글을 주는 등 군자로서 유종(有終)하는 본보기를 보여줬다.】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450주년 재현’ 행사는 퇴계선생의 마지막 귀향으로부터 꼭 450년이 되는 올해 이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다.

선생의 뜻이 깃든 그때 길을 따라 걸어가며 그 속에 담긴 선생의 뜻한 바를 통한 인성함양, 걷기 문화의 활성화, 각 지역에 남겨진 문화유산의 재발견의 기회로 삼고자 했다.

이를 위해 퇴계학 전문 연구자와 유림, 후손들로 재현단을 구성해 퇴계선생의 귀향일정과 노정에 최대한 맞춰 지난 9일 서울 봉은사에서 개막행사를 가지고 10일부터 걷기를 시작해 오는 21일 도산서원 도착을 앞두고 있다.

재현단은 고지도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답사를 통해 확인한 퇴계선생의 마지막 귀향길 경로를 따라 서울에서 남양주, 양평, 여주, 충주, 청풍, 단양, 영주, 안동 도산으로 이어지는 육로 250여㎞를 12일에 걸쳐 걷고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옛길 70여㎞는 부득이 선박을 이용해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재현단과 함께 전 구간, 선택구간을 걷는 일반인들의 참가도 이어져 행사의 의미를 더욱 높였다. 이들은 8세 어린 학생부터 8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 다양한 지역에서 참여했다.

이번 재현 행사의 또 하나 두드러진 특징은 각계각층의 전문가, 관계자, 일반인 등이 한마음 한뜻으로 협조하고 성원해줬다는 점이다.

9일 열린 봉은사 개막행사에만 해도 우리나라 IT업계 1세대인 삼보컴퓨터 창업자 이용태 전 도산서원 원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봉은사의 원명 주지의 환영사와 정재숙 문화재청장의 축사로 행사의 문을 열었다.

이어진 기념 강연에서는 이광호 국제퇴계학회 회장으로부터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의 의미와 오늘날 우리가 본받을 가치가 있는 점을 살펴봤으며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퇴계선생 귀향길을 한국의 격조 높은 순례길 차원으로 바라보며 참가자들에게 걷기 및 걷기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해 흥미를 유발했다.

걷기 코스에서도 퇴계학 전문 연구자들이 당시 선생이 남긴 시(詩)를 창수(唱酬)하고 강연회를 개최해 선생의 정신과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그 지역주민들과 함께 나눴다.

걷기 9일 차인 18일에는 죽령 정상에서 어린시절부터 서로 아끼고 따르던 온계선생(이해·1496~1550)과 퇴계선생이 헤어지면서 시를 창수하는 애틋한 장면이 재현됐다.

1549년 당시 충청감사였던 온계선생과 풍기군수였던 퇴계선생은 주고 받은 시에서 이듬해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지만 온계는 간신들의 모함으로 고문 끝에 귀양가다 세상을 뜨는 바람에 결국 마지막 이별이 되고 말았다.

1569년 음력 3월 17일, 퇴계선생은 그토록 머무르고자 했던 고향 도산으로 돌아왔고 때 마침 선생이 가장 사랑한 매화가 기다린 듯 곳곳에 활짝 피었다.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관계자는 “비록 선생은 도산에 돌아와 1년 9개월 후 세상을 떠났지만 오늘날 선생의 귀향길에서 되새기고자 한 참 뜻은 바로 세상에 착한 사람이 많아지기를 소원하며 이를 위해 ‘나아감 보다는 물러남’을 택해 끊임없이 자신을 수양하고 학문연구와 후학양성에 힘쓴 자세”라고 설명했다.

이번 재현 행사는 오늘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다.
물질적으로 크게 풍족하나 개인은 불행해지고 반목과 갈등이 점점 심해지는 이 시대에 그 어떤 책과 이론보다도 깊고 확실하게 우리 삶의 방향을 생각해 보게 하는 가르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선생의 가르침을 생각해보며 걷는 800리 노정이 다가오는 21일 도산서원에 도착함으로써 마무리된다. 이날 오전 8시 도산 삽골재 정상에서 도산서원까지 약 1㎞의 마지막 걷기 행사에는 이철우 경북지사와 권영세 안동시장이 함께할 예정이다.
지난 10일 참가자들이 광나루 행사에 모인 시민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제공

걷기 일정을 마친 후에는 서원 상덕사에서 선생에게 12박 13일의 재현 경과를 고유한다.
폐막행사는 안동시민, 유림, 인근 지역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12박 13일의 재현 노정에 대한 안병걸 안동대 교수의 경과보고와 재현단 단장이자 김병일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의 인사말로 시작된다.

이희범 퇴계학진흥회장의 축하인사에 이어 퇴계선생의 만년 귀향과 은거생활이 갖는 의미를 새기는 전북대 김기현 명예교수와 고려대 김언종 명예교수의 기념강연도 마련된다.
강연은 퇴계학 분야 석학들의 목소리를 통해 벼슬보다 학문과 인생의 완성에 큰 뜻을 둔 퇴계선생의 참모습을 그려보는 시간이다.

이어 퇴계선생 16대 종손이자 도산서원운영위원장인 이근필 종손의 인사로 이번 행사는 마무리된다.

안동=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