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깨끗한 실내공기 공급을 위한 ‘가습·환기 겸용 공기순환 장치’에 눈길이 쏠린다.
미세먼지와 황사를 말끔히 제거하고 가습·환기 기능까지 완벽하게 갖춘 이 장치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하남산단 4번로 ㈜지구 류명열(52·사진) 대표이사가 2015년 특허 등록했다.
전남대와 산학협력을 통해 개발한 이 제품은 당시 미세먼지·황사의 폐해와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상대적으로 덜한 탓인지 기대만큼 빛을 발하지 못했다.
수년간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획기적 제품이지만 허사에 그치는 듯 싶었다.
하지만 올 들어 잦아진 미세먼지 주의보가 그동안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류 대표의 제품을 세상 밖으로 불러냈다.
냉동설비·공조시스템 분야의 대표적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꼽히는 류 대표는 지금도 자신이 ‘국내 최고 기술자’라고 자부한다.
순천공고 출신인 그는 1988년 2월 캐리어㈜에 입사한 이후 만 10년간 현장에서 악전고투하며 기술실무를 익혔다.
남들이 꺼려하는 먼 곳의 냉동설비 수리까지 무조건 자원해 도맡았다. 전국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단숨에 달려갔다.
사양이 까다롭고 노후된 냉동설비를 밤새워 고치는 동안 그의 실무 능력은 시나브로 늘었다.
일취월장한 실력 덕분에 때로 누구도 수리하기 힘들다고 고개를 내젖는 냉동설비를 거뜬히 고쳐 주위를 놀라게 했다.
자칫하면 고철로 버려지려던 설비를 되살려내는 성취감은 그를 항상 뿌듯하고 들뜨게 만들었다.
류 대표는 다양한 냉동·공조설비의 원리와 구조를 손에 익힌 이 시절을 주저없이 ‘인생의 황금기’로 꼽는다.
기술자로서 미련 없이 실력을 쌓아 발휘할 수 있었고 나름대로 주변의 인정도 아낌없이 받았기 때문이다.
잠시 관련회사인 ㈜캐리어냉열로 직장을 옮긴 그는 창업을 꿈꾸게 됐다.
“냉동설비와 공조시스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아는데...”
그즈음 결혼해 득남한 류 대표는 고심 끝에 첫 아들의 이름을 딴 ㈜지구를 설립했다. 그동안 익힌 기술만 믿고 맨몸으로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괜히 손을 댔다가 거래처로부터 적잖은 돈을 떼이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근근이 버티던 류 대표는 사업기반을 구축할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실내공기의 적인 미세먼지와 황사를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장치개발에 줄기차게 매달렸다.
“전주 한지나 참숯의 제습기능을 적절히 활용하고 공기순환 장치를 더하면 더 나은 공기청정 장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밤샘 연구를 거듭했지만 경제성과 수명, 사후처리 등의 난관에 직면해 매번 좌절을 거듭했다.
상품화 직전에 갔다가도 아무리 길어야 6개월 주기로 고가의 부품을 교체해야 하는 단점이 발목을 잡고는 했다.
고민하던 류 대표는 2000년대 초반 해외사업 진출을 위해 독일을 방문했다가 해법을 찾았다.
독일에서 공업용제습제 ‘몰리큘라시브’를 접하고 환호한 것이다.
미세먼지 등을 씻어내고 외부로 신속히 배출하는 가습여재로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수명도 반영구적으로 가습제 등 부품교체에 시달릴 이유가 없고 인체에도 무해하다.
물을 흡수했다가 열을 가하면 100% 물을 다시 토출하는 가습기능이 매우 뛰어나면서도 가격은 저렴한 ‘몰리큘라시브’는 사막의 한 가운데서 방황하던 류 대표에게 오아시스처럼 다가왔다.
열을 가하면 3분 안에 건조됐다가 100% 물을 다시 뱉어내는 몰리큘라시브가 독일에서 20년 가까이 안정성과 효과가 이미 검증됐다는 점도 류 대표를 끌리게 만들었다.
“하루의 90% 이상을 실내에서 생활하는 현대인들에게 공기의 질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복합화학물질을 소재로 한 건축자재 사용이 매년 증가하면서 ‘새집증후군’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실내공기 오염의 심각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세라믹과 7대3으로 섞어 만드는 몰리큘라시브는 지구상 최고의 가습여재입니다.”
그는 “대기오염에 의한 사망자가 연간 최대 600만 명에 달한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발표는 과장된 게 아니다”며 “실내 오염물질이 폐 등 신체장기에 스며들 확률은 실외 오염물질에 비해 1000배나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조사결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류 대표가 수백 번의 실패를 딛고 개발하는 데 성공한 ‘가습·환기 겸용 공기순환 장치’의 특징은 저렴한 비용으로 실내공기 질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점이다.
짧으면 2~3개월, 최장 6개월에 한번씩 반드시 교체해야 되는 값비싼 필터도 전혀 필요 없다.
열교환기판 모형으로 제작해 만든 몰리큘라시브 덕분이다. 오염된 공기를 외부로 내보내는 성능도 우수하다.
기화식 가습여재로 적절한 몰리큘라시브를 활용해 그가 특허를 낸 장치는 최근 미세먼지로 인해 삶의 질 저하가 극도로 우려되면서 뒤늦게 그 가치가 급상승하고 있다.
2006년 이후 100가구 이상 아파트에 실내공기 순환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건설산업기준법 등 관련법규가 개정된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실내공기의 질 개선에 뛰어난 류 대표의 특허품은 지난해부터 초·중·고 등 각급 학교에도 서서히 보급되기 시작했다. 류 대표는 겨우 한숨을 돌리고 있다.
“실내공기는 산소량뿐 아니라 온도와 습도도 적절해야 합니다. 습도가 높으면 바이러스와 곰팡이의 활동이 활발해집니다. 유해가스의 확산을 막는 역할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미세먼지와 함께 라돈의 심각성도 대두되고 있습니다. 올 초부터 그에 관한 대학원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광주상공회의소는 지난 10일 류 대표를 이례적으로 초청했다. 각 기업 대표 등이 다수 참석한 자리에서 기업홍보와 제품설명 브리핑을 갖도록 특별히 배려한 것이다.
류 대표는 이 자리에서 탁월한 효과를 가진 가습여재를 찾아 전국 각지와 해외를 장기간 떠돌았던 경험담을 고스란히 털어 놓았다.
전주 한지와 황토, 맥반석, 참숯 등을 소재로 시도했지만 여러 문제에 부딪혀 잇따라 투자비도 회수하지 못한 채 개발 작업을 수차례 접을 수밖에 없었던 눈물겨운 사연을 진솔하게 들려줬다.
그는 브리핑에서 “전남대 연구진과 수년간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실패를 거듭한 끝에 기존 환기장치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외부에서 유입되는 공기 중 미세먼지를 말끔히 물로 씻어내고 실내 순환 때도 습도조절과 동시에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장치를 어렵사리 개발했다”고 회고했다.
류 대표가 수백 번의 실패를 딛고 개발하는 데 성공한 ‘가습·환기 겸용 공기순환 장치’의 특징은 현재 웬만한 아파트마다 의무적으로 설치된 천장매립형 공기순환 시스템에 일부 장치만 추가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얼마든지 저렴한 비용으로 실내공기 질을 크게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당초 예상하지 않았던 빼어난 미세먼지 제거 기능과 탈취효과 등은 덤이다.
하루 8시간씩 한 달 가동할 경우 수도·전기요금을 합쳐 1만원도 되지 않는 작은 금액이면 깨끗하고 안전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킬 수 있다.
정기적 필터교체 등이 필요하지 않은 이 장치는 고장 났을 때 적은 비용으로 보수가 손쉽다는 점도 장점이다.
“인간이 가장 숨쉬기 좋은 건강 산소량은 22%입니다. 지구를 떠도는 모든 대기는 항상 20.95%의 산소량를 정확히 유지한다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이유를 제대로 알 수 있을 겁니다. 실내공간이 밀폐된 학교나 병원 같은 다중이용시설은 환기를 자주 시키지 않으면 산소량이 서서히 떨어지고 이산화탄소량이 늘어납니다. 제가 개발한 장치를 달면 24시간 22%의 적정 산소량을 유지하게 됩니다.”
류 대표는 “적정 산소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형 건물마다 산소발생 장치를 가동해야 하는 데 막대한 비용투자가 필요해 그게 쉽지 않다”며 “좋은 실내공기 공급에 관해 장기간 연구하다보니 기화식 공기순환 장치를 통해 미세먼지와 황사는 물론 아세톤, 벤젠 등 오염물질까지 말끔히 제거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고 남모를 개발 과정을 토로했다.
그는 “항상 겸손한 자세로 남의 말에 귀기울이려고 노력한다”며 “아들 이름이기도 한 회사 사훈을 청설(廳雪:눈 내리는 소리도 듣는 자세)로 정한 이유 입니다”라고 겸손해했다.
류 대표가 이끄는 공조·냉동 설비 분야의 강소기업 ㈜지구는 2016년 196억원, 2017년 280억원에 이어 지난해 32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순항 중이다.
그는 “기류 발생과 습도를 무시한 요즘 초·중·고 교실의 냉·온방시스템은 짧은 시간에 공기가 금방 오염되기 쉬운 획일적 구조”라며 “뒤늦게나마 냉·난방·공조 시스템 분야의 시장 반응이 좋아졌지만 미세먼지를 잡으려면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