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주 소재 아파트에서 벌어진 방화·살해 사건 사망자의 유족이 SNS 글을 통해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사건을 ‘묻지마 범죄’가 아닌 약자를 대상으로 한 ‘계획범죄’로 봐야 한다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도 공유했다.
A씨(21)는 지난 17일 진주시 가좌동 주공3차 아파트에서 발생한 참사로 사촌 동생 B양(12)과 할머니 C씨(65)를 잃었다. B양 어머니이자 A씨에게 이모인 D씨(41)도 중상을 입어 입원 치료 중이다.
A씨는 이후 SNS에 글을 올렸다. 그는 “네, 맞아요. 제 가족의 일이에요. 긴 글이지만 읽어주세요”라며 사건 당시 건물 안에서 벌어진 일을 설명했다.
A씨는 “새벽에 창문 깨지는 소리, 폭죽 터지는 소리, 남녀의 비명을 듣고 무서워 방불을 켰더니 이미 제 방 창문으로 연기가 들어오고 있었다”며 “저는 바로 이모, 이모부, 동생이 있는 방으로 뛰어가 불이 났으니 피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동생과 이모에게 물에 젖은 수건을 건네며 대피하던 중 2층에서 끔찍한 살인자를 만났다”면서 “저와 먼저 눈이 마주쳤지만 바로 앞에 있던 제 동생을 먼저 붙잡고 흉기로 공격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저의 예쁜 동생은 그렇게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 사람을 말리던 저희 이모도 크게 다쳐서 지금 병원에서 치료 중”이라고 했다.
또 “3층에 할머니가 살고 계셨는데, 할머니도 그 끔찍한 살인범을 말리다가 돌아가셨다. 이 사람은 우리 가족을 파탄 낸 사람”이라며 청원 링크를 공유했다. “귀찮더라도 한 번씩만 들어가서 (참여)해달라”고도 했다.
A씨가 공유한 청원은 경찰 수사를 규탄하는 내용이었다. 피의자 안모(42)씨가 거주기간 내내 이상 행동을 보여 주민들이 여러 차례 경찰에 신고했음에도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청원인은 결국 예측 가능했던 사건이 벌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원인은 “피해자 대부분이 어린이와 노약자이고, (피의자는) 범행 후 ‘다 죽였다’고 소리치기도 했다”며 “이는 우발적인 범행이나 묻지마 범죄가 아닌 약자를 대상으로 한 계획적인 범죄 행위였음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이 청원은 18일 오후 3시55분 기준 2만7507명의 동의를 얻었다.
안씨는 2015년 12월 이 아파트 4층 406호에 입주한 뒤 5층 주민들 집 앞에 오물을 뿌리는 등 난폭한 행동을 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바로 위층에 사는 506호를 유독 괴롭혔다고 한다. 지난달에는 506호 주민인 최모(18)양을 집 앞까지 뒤따라 오기도 했다.
주민들이 여러 차례 경찰에 신고했지만 특별한 조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양, 최양과 단둘이 살던 숙모 역시 안씨의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이 때문에 경찰의 안일한 대처가 예견된 참사를 막지 못한 것이라는 비판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1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현지 주민들에 따르면 범인은 오래전부터 이상행동을 보였고 따라서 그런 불행을 막을 기회도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한다”며 “경찰은 그런 참사를 미리 막을 수는 없었는가 등 돌이켜 봐야 할 많은 과제를 안게 됐다. 하나하나 되짚어보고 그 결과에 합당한 조처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씨는 17일 오전 4시25분쯤 자신의 집에 불을 낸 뒤 2층 승강기 입구에서 대피하는 주민들을 흉기로 찔렀다. 이 사건으로 주민 5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 4명이 경상을 입었으며 9명이 연기를 흡입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