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하고, 짧게 하고, 정보 없이 불구경만…KBS 재난방송 총체적 난국

입력 2019-04-18 00:10 수정 2019-04-18 00:10
경기 과천시 방송통신위원회 모습. 뉴시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강원지역 산불 관련 한국방송공사(KBS)의 재난방송 행태를 질타했다.

김석진 방통위 부위원장은 17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KBS는 재난방송 주관방송사이지만 산불 대응 3단계를 발령한 지 1시간10분이 지난 뒤에야 첫 특보를 했다”며 “CJ헬로가 지역채널 영동방송에서 2시간 빨리 특보를 시작했는데 재난주관방송사가 늦었다”고 지적했다. KBS 재난방송은 지난 5일 오후 10시53분부터 10여분간 진행됐다.

김 부위원장은 “MBC는 오후 11시6분, YTN은 오후 10시, 연합뉴스TV는 오후 10시40분에 특보를 시작했다”며 “KBS는 10분 잠깐 하고 ‘오늘밤 김제동’을 방송했다. 지역 케이블방송까지 재난 특보를 하고 있는데 주관방송사가 안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어 “KBS는 중계차를 강릉 주변에 두고 고성이라고 속이는 등 취재 윤리도 저버렸다”며 “야당 일각에서는 주관방송사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예산을 지원받으면서 (재난방송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해 책임을 묻고 감독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난방송 내용도 비판을 피해가지 못했다. 단순 현장 중계에 그쳤다는 이유에서다. 김 부위원장은 “재난방송 특보를 보면 맹렬하게 타오르는 기세를 중계하더라. 무슨 정보를 줄 수 있느냐. 불구경을 시켰다는 지적까지 나온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산불은 풍속과 방향을 고려해 30분 뒤 어느 마을을 덮친다는 정보를 줘야 한다. 하지만 우리 재난방송은 스케치랑 이재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것만 보여주고 정보를 주지 않고 있다”며 “예상할 수 있게 대피를 도와야 한다. 라디오도 안되고, 장애인 수어 방송도 없다. 외국인 영어 자막도 필요하면 넣을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표철수 상임위원 역시 “나사가 풀린 것도 도를 넘었다”며 거들었다. 그는 “KBS 출신으로 참담하기 그지 없다. 재난방송의 부실함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느슨하고 무책임한 행태를 일삼는다면 소중한 수신료가 왜 투입돼야 하나. 모든 구성원이 각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승동 KBS 사장. 뉴시스

앞서 양승동(58) KBS 사장은 지난 10일 임원회의에서 재난방송 전면 개선을 약속한 바 있다. 그는 “이번 재난방송에 많은 직원들이 수고했지만 ‘국민 눈높이에 미흡했다’는 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전반적인 시스템을 점검하고 재정비해야 한다”며 “특히 장애인과 노약자, 외국인들이 KBS 재난방송으로 도움 받을 수 있도록 매뉴얼을 보강하고 시스템을 강화함은 물론 모의 방송도 충분히 해 KBS가 골든타임에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방통위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강원도 고성, 속초, 강릉, 동해, 인제 지역의 피해민을 지원하기 위해 6개월간 수신료를 면제키로 했다. 면제 대상은 특별재난지역 내 멸실 또는 파손된 주택 및 상가 등 건축물과 이재민 대피 장소에 비치된 수상기다.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산불 피해 사실을 확인받은 세대는 별도 신청 없이 수신료를 면제 받을 수 있다.

백승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