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가 이른바 ‘몰래변론’이 법조계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검찰의 형사사건 변론기록 제도 개선과 연루 검사 징계 강화 등을 권고했다. 몰래변론은 전관 변호사들이 정식으로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고서 의뢰인을 변론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사위는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조사단)에서 ‘선임계 미제출 변론(몰래 변론) 사건’ 조사 결과를 보고 받고 “몰래변론이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17일 심의 결과를 발표했다.
과거사위는 앞서 검찰 출신 전관 변호사들이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고 수사나 내사 중인 형사사건 무마 등을 조건으로 거액의 수임료를 받는 몰래변론이 전관예우의 대표 유형이라 보고 조사단에 포괄적 조사를 권고했다. 이에 조사단은 대한변호사협회의 전관 변호사 징계 자료, 서울중앙지검 사건 처분 기록을 비롯한 자료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상습도박 사건에서 몰래변론 혐의로 기소됐던 홍만표 변호사 사건을 집중 조사했다.
조사단이 2009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최근 10년간 변협의 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에 대한 몰래 변론 관련 징계처분 내역을 조사한 결과 변협 전관비리신고센터에 총 126건이 접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변협은 이중 66건 55명의 전관 변호사를 징계했다. 제명 2건(1명), 정직 8건(6명), 과태료 50건(42명), 견책 6건(6명)으로 대부분 과태료에 그쳤다.
조사단에 따르면 정 전 대표 사건에서 홍 변호사는 사건 지휘라인에 있던 서울중앙지검 3차장을 만나 수사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정 전 대표에 대한 불구속 수사 등 희망사항을 전달하기도 했다. 실제로 2015년 8~10월 2개월간 18차례 통신을 주고 받은 것도 확인됐다. 이 사건에서 검찰은 정 전 대표에 대해 상습도박과 업무상 횡령 중 상대적으로 처벌이 약한 상습도박만 기소하고 업무상 횡령 부분은 미처분 상태로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은채 처분을 누락한 것으로 파악됐다. 조사단은 이에 대해 홍 변호사의 몰래변론 등에 따른 결과라 볼만한 직접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으나 검사가 몰래변론에 응한 점, 검찰권 행사에 과오가 있던 점 등을 종합할 때 검찰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 바탕으로 과거사위는 검찰의 형사사건 변론기록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검찰 형사사건에 관한 기본 정보를 온라인 등을 통해 충실하고 신속히 제공해 직접 변론의 필요성을 줄이고, 검찰청 출입기록과 연계한 변론 기록 시스템 개발로 누락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아울러 몰래 변론에 연루된 검사의 감찰 및 징계를 강화, 수사검사 외 상부 지휘검사에 대한 변론제도 개선, 사건 분리 처분시 미처분 누락 방지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과거사위는 이날 이른바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심의 결과도 발표했다. 과거사위는 “경찰의 당시 수사 과정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가 이뤄졌고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발생한 모순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채 수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1990년 1월 부산 사상구 엄궁동 낙동강변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인물이 차 안에서 데이트 중이던 연인을 납치해 여성을 살해하고, 남성에게 상해를 입힌 사건이다. 갈대숲에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당시 단서가 없어 수사에 난항을 겪던 경찰은 이듬해 11월 최인철씨와 장동익씨를 용의자로 검거해 살인자로 지목하고 검찰에 송치했다. 두 사람은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013년 모범수로 감형돼 출소했다. 이후 과거 경찰 수사 과정에서 고문으로 인한 허위자백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변호사 시절 변호인을 맡아 주목받기도 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변호인으로서 수사 과정에 고문이 있었다며 문제를 제기했었다.
과거사위는 “최씨의 장씨의 고문 피해 주장이 일관되며 객관적으로 확인된 내용과도 부합해 신빙성이 있다”며 “당시 부산 사하경찰서 수사팀에 의한 고문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어 “최씨와 장씨가 검찰 수사과정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로 어쩔 수없이 자백했다고 진술했지만 당시 수사검사는 그러한 진술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의자가 자백을 번복하는 경우 검사가 자백을 검증할 수 있는 기준과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살인 및 강간 같은 강력사건의 경우 수사과정에서 확보한 증거물 중 유죄 입증에 관련된 중요 증거물에 대해 기록 보존 또는 공소시효 만료시까지 보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도 권고했다. 아울러 장애인 등 법률적 조력이 필요한 피조사자들에 대한 실질적 조서열람권 보장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안대용 기자 dan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