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얼굴을 물밑에 묻고 수면 위로 떠 있는 걸 봤어요. 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었죠.”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 바로 뛰어들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제1회 119의인상을 수상한 배진석(56)씨는 스스로 처해질지 모를 위험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물에 빠진 노인을 건져 살려낸 ‘의인’이다.
폭염이 시작됐던 지난해 6월의 일이었다. 배씨는 평소처럼 경기도 수원 원천호수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출근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 인적 드문 곳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온 것은 저수지를 중간쯤 지났을 때였다. 배씨가 소리를 듣고 달려간 곳에서 중년 여성 두 명은 발을 동동 구르며 “사람을 살려 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저수지의 물결은 잔잔했다. 그곳에 남성의 등이 살짝 올라와 있었다. 배씨는 그곳에 있던 중년 여성 두 명에게 “할아버지가 물에 빠진 지 얼마나 됐느냐”고 물었다. 여성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사실 배씨는 망설였다. 성치 않은 몸 탓이었다. 재작년 4월 교통사고로 골절됐던 오른쪽 검지 뼈와 중추골의 깁스를 푼 날이 바로 전날이었다. 몸에 박혀 있던 핀은 4개나 있었다. 그렇게 2~3초를 망설였을까. 배씨는 허리 높이 정도 되는 난간을 붙잡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3~4m를 걸으니 물이 목까지 차올랐다. 배씨는 곧 자유형 자세를 취해 노인이 있는 곳으로 헤엄쳤다. 그렇게 몇 차례 자맥질을 하자 오른손에 노인의 발목이 닿았다. 배씨는 손을 더 뻗어 노인의 발목을 붙잡고 헤엄쳐온 물길을 따라 나왔다.
뭍으로 끌어낸 노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동공은 확장됐고, 경동맥은 멈췄다. 심정지가 분명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노인을 구한 배씨는 전남 영암소방서에서 23년간 일했던 소방대원 출신이었다. 배씨는 생각했다. ‘심폐 소생술.’
배씨는 심폐소생술 60회와 인공호흡 2회를 반복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배씨는 멈추지 않았다. 4분 뒤,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거짓말처럼 할아버지가 ‘욱’ 소리를 내면서 깨어났다.
배씨는 할아버지를 옆으로 눕혀 등을 두드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을 맞춰 도착한 구급차에 노인을 인계했다. 그렇게 상황은 종료됐다. 그제야 배씨의 오른손이 욱신거렸다. 깁스를 풀고 하루 지난 바로 그 손이다.
배씨는 그때를 회상하며 “몸이 성치 않기도 했고, 2인 1조를 이뤄 구조 활동을 해야 하는데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망설여졌던 게 사실”이라며 “물에서 할아버지를 끌어올 때 되레 내가 물에 빠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배씨는 소방대원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배씨의 주변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배씨는 “직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모두 ‘우리는 그렇게 못 한다. 대단하다’라며 칭찬해 줬다”고 말했다.
소방청에서 받는 119의인상은 그래서 특별하다. 배씨는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기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최근 강원도 산불을 신속하게 진압한 소방관들을 지목했다.
“내가 명예퇴직을 하지 않았으면 현장에 있었겠죠. 고생하신 소방관분들께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강원도민 분들도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강태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