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주까지 여성이 결정” 이정미, 낙태죄 폐지 1호법 발의

입력 2019-04-15 17:18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낙태죄 폐지 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정의당이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법안을 국회 최초로 발의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1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는 헌재 결정의 취지와 시대 변화에 부응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입법 조치에 나서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형법 및 모자보건법 법률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형법 개정안의 경우 낙태죄 폐지를 위해 형법 27장 ‘낙태의 죄’를 ‘부동의 인공임신중절의 죄’로 바꾸고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 규정을 삭제했다.

임부의 동의 없이 낙태를 시킬 때만 죄를 묻도록 해 임신중절을 선택한 임부와 그의 요청에 따라 수술을 진행한 의료인이 처벌 받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 대표는 “인공임신중절을 선택한 임부도, 시술한 의료인도 죄인이 될 수 없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반대로 임부의 동의 없이 낙태하게 해 상해를 입힐 경우 기존 징역 ‘5년 이하’에서 ‘7년 이하’로,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징역 ‘10년 이하’에서 ‘3년 이상’으로 처벌을 각각 높였다.

또 관련 형법 조항에서 ‘낙태’라는 단어 자체를 모두 삭제하고 ‘인공임신중절’로 대체했다. ‘태아를 떨어뜨리다’라는 의미를 갖는 낙태라는 단어는 이미 부정적인 가치판단이 전제된 용어이기 때문이라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들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에 환호하고 있다. 뉴시스

모자보건법 개정안의 경우 임신 14주까지는 임부의 요청만으로 다른 조건 없이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토록 했다. 3개월 내 임신중절이 94%를 차지하고 있다는 보건복지부의 조사 결과를 근거로 들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이 기간 내에 임신의 중단 및 지속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이 시기 행해지는 임신중절은 의료적으로도 매우 안전하다”고 덧붙였다.

임신 14주~22주 기간 동안에는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들어 임신중절을 할 수 있도록 조항을 추가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결정이다. 기존의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 사유는 삭제하고 ‘태아가 건강상태에 중대한 손상을 입고 있거나 입을 염려가 뚜렷한 경우’로 대체했다.

다만 22주가 넘은 상태에서의 임신중절은 ‘임신의 지속이나 출산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로만 한정했다.

배우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내용도 삭제했다. 해당 조항은 여성을 독립적 존재로 보지 않는 낡은 사고의 산물이라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성폭력범죄로 인해 임신했다고 인정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도 임신중절이 가능토록 했다. 기존법에 따르면 강간과 준강간에 의한 임신의 경우에만 중절할 수 있다. 이 같은 기존법에는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게 되면 시술이 불가능해지는 문제점이 있고, 미성년자에 대한 간음이나 위력에 의한 간음 등 타 성폭력범죄로 인한 임신은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미비점이 있다고 봤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를 판결하기 위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착석해 있다. 뉴시스

이 대표는 “임신중단율은 낙태죄의 존재 유무가 아니라 내실 있는 피임교육과 육아복지정책에 달려있다”며 “국가가 해야 할 일도 그것”이라고 강조했다. 낙태죄를 폐지하면 출산율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현실은 다르고, 유엔경제사회이사회가 2016년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임신중지를 법적으로 엄격하게 제한하는 나라와 합법인 나라의 임신중단율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종교계의 우려도 언급했다. 이 대표는 “안전한 임신중지는 여성의 생명권과 기본권 문제”라며 “종교계의 걱정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현명하게 이 문제를 풀어나갈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끝으로 “낙태죄는 그간 우리 사회가 여성을 아이 낳는 도구이자 자기 결정을 할 수 없는 존재로 취급해 왔음을 보여주는 거울이었다. 우리 국회는 이를 외면해 왔다”며 “이번 헌법불합치 결정은 절반의 여성 독립선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제 국회가 여성의 진정한 시민권 쟁취를 위해 이 독립선언을 완성할 때”라며 의원들의 협조를 요청했다.

백승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