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이론과 간접 증거로만 존재했던 블랙홀을 확인했다. 세계 8곳의 전파망원경을 지구 크기의 거대한 망원경처럼 하나로 연결한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Event Horizon Telescope)으로 블랙홀을 포착했다. 유럽남방천문대는 지난 10일 오후 10시(한국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블랙홀의 ‘형상’을 공개했다.
1. 블랙홀은 무엇인가
빛을 흡수할 정도로 엄청난 질량을 가진 존재의 개념은 1783년 영국 왕립학회 서한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독일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이로부터 두 세기 뒤인 1915년, 중력으로 시공간이 휘어 빛도 굴절되는 개념을 제안한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독일 물리학자 카를 슈바르츠실트는 이 이론을 바탕으로 중력이 커져 빛까지 끌어당기는 특이한 천체의 존재를 예상했다. 이 천체가 바로 블랙홀이다.
블랙홀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시기는 1960년대 들어서부터다. 대학 강단이나 언론 보도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됐던 ‘우주의 검은 구멍(Black Hole in Space)’이라는 설명이 지금의 명칭으로 자리를 잡았다. ‘구멍’이라는 표현이 사용됐지만, 블랙홀은 사실 ‘뚫린 공간’이 아니다. 엄청난 질량을 가진 존재인데, 그 실체를 설명할 개념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EHT 프로젝트에 사용된 것처럼 천문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건의 지평선’은 블랙홀을 가장 적절하게 묘사한 용어로 볼 수 있다. 인간은 지평선 너머에 땅이든, 강이든, 바다든 어느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추정할 뿐 그것이 무엇인지 볼 수도, 짐작할 수도 없다. 일반상대성이론은 ‘그 무언가의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이 외부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경계면’을 사건의 지평선으로 설명하고 있다.
2. 마침내 인류에게 인사한 블랙홀
EHT는 미국 하와이주 2곳과 애리조나주 1곳, 칠레 아타카마 사막 2곳, 스페인·멕시코·남극의 1곳에 설치된 전파망원경을 연결한 프로젝트다. 세계 8곳에서 포착된 전파신호를 분석하고 합성하는 기술로 지구 크기의 거대한 가상의 망원경을 구동했다. 관측은 2017년 4월 5∼14일에 이뤄졌다. 한국천문연구원 등에서 한국인 8명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 결과, 인류는 처음으로 블랙홀의 실체를 확인했다. 블랙홀이 포착된 곳은 처녀자리 중앙 M87 은하 중심부. 지구로부터 5500만 광년 떨어져 있다. 질량은 태양의 65억배로 추정된다. 태양의 질량은 지구의 33만배다. 블랙홀의 질량은 지구의 2145조배 이상으로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중력으로 고체·액체·기체는 물론 빛까지 빨아들이고 있다.
EHT가 포착한 블랙홀은 오렌지색 도넛 모양의 고리를 두르고 있다. 이 고리는 블랙홀의 외형이 아니다. 블랙홀의 영향으로 굴절됐지만 강한 중력에서 벗어나 지구까지 도달한 전파다. 블랙홀은 이 고리 내부의 검은색 원형에 해당한다. EHT 연구진은 이 검은색 원형을 ‘블랙홀의 그림자’라고 설명했다. 블랙홀은 이 그림자의 정중앙에 있을 무언가다.
3. 블랙홀 주변 고리가 오렌지색인 이유
블랙홀은 빛마저 끌어당기는 강력한 중력을 갖고 있다. 블랙홀에 흡수된 가시광선은 빠져나올 수 없다. 블랙홀의 ‘형상’을 어떤 식으로든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EHT에 사용된 전파망원경은 가시광선이 아닌 전파를 관측하는 만큼 색상을 구분하지 않는다. EHT에서 블랙홀 관측을 위해 잡은 전파는 1.3㎜ 대역의 긴 파장이다.
블랙홀 주변 고리의 실제 색상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조금 허무할 수 있지만, 오렌지색은 일종의 ‘연출’이다. EHT 연구진이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오렌지색을 골라 블랙홀 주변 고리 부분에 채색했다. 다만 블랙홀의 주변 물질에서 발산된 전파라는 점은 분명하다. 블랙홀로 빨려들지 않고 빛의 속도로 5500만년을 날아 지구까지 도달한 전파의 ‘생존자’인 셈이다.
EHT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국천문연구원 변도영 박사는 12일 “블랙홀은 빛을 방출하지 않아 그 형상을 볼 수 없다. 이번 프로젝트는 주변 물질의 빛으로 드리워진 그림자를 통해 블랙홀의 실체를 확인한 것”이라며 “주변 고리의 오렌지색은 이해를 돕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변 박사는 “이번 프로젝트로 인류의 블랙홀 관측 사상 가장 직접적인 증거를 얻었다. 역사에 남을 프로젝트에 참여해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유럽이 이번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한국이 주도할 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더피플피디아: 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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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