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처벌이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으면서 산부인과 의사들의 낙태 시술 거부권에 대한 논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낙태 합법화, 이제 저는 산부인과 의사를 그만둬야 하는 것인지…’라는 제목의 글이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다.
글 작성자는 개인의 신념을 근거로 내세우며 낙태 진료 거부권을 요구했다. 작성자는 “저도 한 여성으로서 낙태를 찬성하는 분들의 의견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그분들의 의견을 존중한다”면서도 “(저처럼) 생명의 신비에 감동해 산부인과를 선택하고 싶은 후배들은 낙태 때문에 산부인과 의사의 길을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독실한 가톨릭이나 기독교 신자의 경우 종교적 양심으로 인해 산부인과 의사의 길을 선택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의사가 원하지 않으면 낙태 시술을 하지 않도록 진료 거부권을 반드시 같이 주시기 바란다. 낙태로 인해 진료 현장을 반강제적으로 떠나야 하는 의사가 없게 해주기를 바란다”며 글을 마쳤다.
해당 주장은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11일 “의사의 개인 신념에 따른 인공임신중절수술에 대한 진료거부권을 인정해야 한다”며 발표한 성명서 내용과도 같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진료거부권’을 요구하는 것은 의료법 15조 때문이다. 의료법 15조에 따르면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개설자는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 만약 임신한 여성이 낙태죄가 폐지되는 2021년 1월 1일 이후 낙태를 요구했을 때 의사가 진료와 시술을 거부한다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원영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직선제) 총무이사는 “중절 수술 트라우마 같은 개인적 이유나 종교적 신념으로 낙태 수술을 하지 않으려는 의사들이 있다. 하지만 의료법 15조는 그대로”라며 “만약 의사가 수술을 거부하면 환자가 고소할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생기면 안 된다는 취지로 의사의 진료 거부권을 주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당한 사유라는 전제가 더 논의돼야 한다. 시설이 좋거나 의사가 능력이 있는데도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정당한 사유에 개인의 신념과 경험을 반영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부연했다.
보건복지부의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이 규칙에 따르면 형법 제270조를 위반하여 낙태하게 한 경우 의사에게 1개월의 자격정지가 주어진다. 원 이사는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은 낙태 진료를 비도덕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자격정지를 받게 되는 것”이라면서 “의사들에게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 이 규칙도 개정대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준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