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개적으로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양국 간에는 이란 제재를 둘러싼 뜨거운 현안이 있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이란산 원유와 석유화학 제품의 수출을 틀어막는 제재를 전면 복원하면서, 한국을 포함한 8개국에 대해 180일 동안 한시적으로 수입을 허용하는 예외를 뒀다. 이러한 예외 적용 시한이 다음 달 3일까지여서 이를 연장해야 하는데, 미국 측이 ‘연장 불가’ 입장을 보이고 있어 쉽지 않은 협상이 될 전망이다.
한·미는 지난해 협의 과정에서 한국이 수입량의 상당 부분을 감축하는 것을 전제로 제재 예외 조치를 연장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제재 근거법인 미 국방수권법상 6개월마다 재협의하는 게 원칙이지만 한·미 간에는 자동 연장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최근 어느 나라도 제재 적용에서 예외를 두지 않겠다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기조를 바꿨다고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12일 “이런 지시가 미 최고위층에서 내려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됐다는 얘기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됐을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란산 원유 수입 문제도 다뤄졌느냐’는 질문에 “모든 경제 분야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 워싱턴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만나 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속 시원한 답을 듣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폼페이오 장관은 ‘한국만 예외로 인정할 경우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외교부 당국자가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8일 국무부 브리핑에서 예외 연장 관련 “적절한 때에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이란 내부에서 제재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자 이번 기회에 더 강하게 압박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제재에도 세계 유가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점도 미국의 강경 기조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에 예외를 인정받는 국가의 숫자가 줄고, 예외를 인정받더라도 허용되는 수입 물량이 크게 축소될 것”이라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대표단을 꾸려 지난달 28일과 지난 8일 미 워싱턴을 찾아 미 정부 대표단과 제재 예외 인정을 위한 협의를 진행했다. 정부는 이란 제재로 한·미동맹을 해치면서까지 경쟁국이 혜택을 보는 일은 없어야 된다는 점, 한국의 두 번째 수출 산업인 석유화학 분야의 경쟁력이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점, 이란과 교역하는 한국 기업의 약 90%가 중소기업이라는 점을 내세워 미 정부를 설득하고 있다. 이란 제재의 핵심 타깃은 원유다. 정부는 한국 업체들이 원유가 아닌 콘덴세이트를 수입하고 있고, 원화 결제 시스템을 운영해 이란으로 직접 현금이 유입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이란 제재는 리비아 정세와도 연관돼 있다. 리비아 정국 혼란으로 원유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유가가 불안정해질 수 있어서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미 정부가 리비아 사태 여파로 한국 중국 일본 등에 대한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 예외국 지위를 연장하되 허용 수입량은 줄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