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결정권·낙태 시기·생명권…헌법재판관 판단 가른 3가지 시각

입력 2019-04-11 18:40

헌법재판관 9명은 11일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 1항과 270조 1항에 대해 4명이 헌법불합치, 3명이 단순 위헌, 2명이 합헌 의견을 냈다. 대부분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이 과도하게 침해되고 있다”고 봤지만 “이보다 태아의 생명권이 더 중하다”는 소수의견도 있었다.

먼저 유남석·서기석·이선애·이영진 재판관 4명은 낙태한 여성에 대한 처벌 규정을 담고 있는 자기낙태죄 조항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입법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도를 넘어 제한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고, 낙태를 처벌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여성의 자기결정권도 헌법에 따라 존중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태아를 독자적 생명체로 볼 수 있는 시기를 ‘임신 22주’라고 제시했다. 이들은 “국가가 생명을 보호하는 입법적 조처를 할 때 인간생명의 발달단계에 따라 보호 정도와 수단을 달리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며 “의학계에 의하면 태아는 임신 22주부터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임신주수에 따라 태아의 생명권 보호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취지다.

또, 자기결정권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임신 사실을 인지한 여성이 사회·경제적 여건을 파악하고 주변의 조언 등을 얻어 낙태여부를 결정한 뒤 실제 수술을 받기까지 충분한 기간이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헌재는 이를 ‘결정가능기간’이라고 규정했다. 다만 구체적 시기를 특정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현행법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형사처벌 규정이 있지만, 임신부의 낙태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고 실제 처벌 사례도 드물다는 것이다. “오히려 태아의 생명 보호를 실효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재판관 4명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또, 낙태가 범죄행위로 규정되면서 관련한 상담이나 교육이 불가능하고,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구제를 받기 어려운 점도 지적했다. 비싼 수술비 때문에 미성년자나 저소득층 여성들은 적절한 시기에 수술을 받기 어렵다고도 했다. 이 조항이 헤어진 남성의 복수나 괴롭힘 수단 등으로 악용되기도 한다고 비판했다.

임신한 여성의 사회활동 지장에 대한 우려, 자녀를 더 감당할 여력이 안 되는 가정 등 다양한 갈등상황을 현행법은 담고 있지 못하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임신한 여성은 이 조항으로 인해 신체적, 심리적 부담, 출산과정에서 수반되는 신체적 고통과 위험을 감내하도록 강제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수술을 집도한 의사를 처벌하는 규정인 동의낙태죄의 경우 “자기낙태죄 조항이 위헌이라면 이 조항도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고 말했다.

단순 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서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낙태를 금지하고 형사처벌하는 것 자체가 모두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단순위헌 결정을 할 경우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진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돼 법적 공백이 생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단순 위헌 결정을 내린 이석태·이은애·김기영 재판관 3명은 기본적으로 헌법불합치와 견해를 같이한다고 밝혔다. 다만 “더 나아가 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부터 14주 무렵까지는 어떠한 사유를 요구함이 없이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숙고와 판단에 따라 낙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것은 결국 임신한 여성이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출산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낙태는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예외적 허용 규정을 두는 것은 임신한 여성의 법적 책임만 면하게 하는 것일 뿐 실질적으로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다만 태아의 생명보호를 위한 경우, 여성의 생명·신체 안전을 위한 경우에는 자기결정권이 제한돼야 한다며 “임신 22주 이후에는 낙태를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 유지를 기대하기 어려운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헌법불합치가 아닌 단순 위헌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서는 그동안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기소되는 사례가 매우 드물었던 점 등을 사유로 들며 “이들 조항이 폐기되더라고 극심한 법적 혼란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본 재판관도 있었다. 조용호·이종석 재판관은 “임신한 여성의 관점에서 볼 때 태아는 나인 동시에 내가 아니다”며 “미묘한 관계”라고 말했다. 태아와 임신한 여성을 명백히 한 사람으로 볼 수 없고, 동시에 다른 생명체로 볼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어 “(태아는) 인간으로 형성돼 가는 단계의 생명으로서 인간의 내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며 “다른 누구로 대체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인격체로 발전할 수 있는 자연적인 성장의 잠재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두 재판관은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된 때부터 출생까지의 태아은 기간의 구분 없이 ‘생성 중인 생명’이라고 했다. 생성 중인 생명이 헌법상 생명권의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면 이는 불완전한 보호라고 지적했다.

또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낙태의 자유를 통해 보호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두 재판관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근본적으로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며 “낙태는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에 어긋나는 생명침해행위”라고 강조했다.

국가기관이 낙태를 금지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 목적이 정당하다고 봤다. 두 재판관은 “임신한 여성의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하는 것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태아의 생명권과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 균형에 대해서는 “국가가 어떤 방법으로, 어느 정도 태아를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결단은 입법자의 과제”라면서도 “임신한 여성에게 신체의 자유 또는 자기결정권을 주기 위해 태아의 생명권을 희생하는 것은 동등한 배려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헌재는 최종적으로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 모두 헌법에 불합치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임신한 여성이 낙태 여부를 결정하는 기간에 대해 ▲ 어떻게 정하고 언제까지로 할지 ▲ 사회·경제적 사유에 대한 확인을 요구할지 ▲ 상담요건이나 숙려기간 등을 추가할지 등은 입법자의 몫으로 남겨뒀다.

그러면서 “입법자는 늦어도 2020년 12월 31일까지는 개선입법을 이행해야 하고, 개선입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위 조항들은 2021년 1월 1일부터 효력을 상실한다”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