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줌 재로 남을 뻔했지만…뇌사 70대, 3명 살리고 세상 떠나

입력 2019-04-10 16:41 수정 2019-04-10 17:11
고 손춘수씨. 가족 제공

뇌사에 빠진 70대가 연명치료 중단 대신 장기 기증으로 생사 기로에 선 3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났다.
가족은 평소 시신 기증이라도 하고 싶다는 고인의 생각을 받아들여 힘든 결정을 내렸다. 자칫 한 줌 재로 남을 뻔했지만 숭고한 생명 나눔을 선택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10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DA)에 따르면 고 손춘수(70·여·대구)씨는 야유회를 며칠 앞두고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남동생이 집으로 찾아갔지만 침대 옆에 의식 없이 쓰러져 있는 손씨를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겼고 급히 뇌혈전 제거술을 시행했으나 결국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 상태에 빠졌다.

가족은 상의 끝에 인공호흡기 등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했으나 평소 시신 기증이라도 하고 싶다던 고인의 바람을 떠올리고 이를 철회했다. 결국 다른 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뇌사 장기기증을 결정했고 간과 좌·우 신장(콩팥)을 기증해 3명의 생명을 살렸다.

만약 그대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죽음을 맞았더라면 장기 이식을 학수고대하던 3명의 목숨을 살릴 기회도 없어질 순간이었다. 가족은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했으나 경북대칠곡병원 신경과 황재춘 교수로부터 장기 기증이라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연명치료중단을 철회하고 장기기증에 동의했다.

평소 고인은 장기 기증에 긍정적이었으며, 할 수만 있다면 꼭 기증을 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 그 상황이 왔고 장기 기증이 가능하다는 말에 가족이 그 뜻을 받든 것이다.

고인의 남동생은 “갑작스럽게 먼저 간 누나에게 평소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해 미안하고 겉으로 표현하진 못했지만 속마음은 늘 감사했다”고 말했다. 또 “누나 덕분에 생명을 얻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누나는 죽은 것이 아니라 아직 살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나의 장기를 받은 분이 누나 몫까지 건강하게 오래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2월 ‘연명의료결정제도(존엄사법)’가 본격 시행된 지 약 1년여 시간이 흘렀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중증 환자의 의미없는 연명치료를 중단한다는데 의의가 있는 제도지만, 자칫 중간에 치료중단으로 인해 뇌사 장기 기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도 있기에 이 부분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다.
연명치료 중단과 뇌사 장기기증은 선택의 문제로 치료 중단 결정 전 장기 기증 의사를 물어볼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KODA 조원현 원장은 “고인처럼 누군가에게 생명을 전할 수 있는 분이 그 의지를 실천할 수 있도록 관련 기관과 적극적인 논의와 함께 범국가적 대책이 마련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