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화의 인저리타임] 과르디올라는 왜 소심했을까

입력 2019-04-10 18:00 수정 2019-04-10 18:00
펩 과르디올라 맨체스터 시티 감독이 10일 영국 런던 토트넘홋스퍼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토트넘과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실점을 한 후 탄식을 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잉글랜드 프로축구 맨체스터 시티가 평소와 달라졌다. 지난 3일 개장한 토트넘홋스퍼 스타디움의 열성적인 분위기를 의식해서였을까. 맨시티의 점유율은 58%에 그쳤다. 슛 시도 횟수에서 10회로, 토트넘의 13회보다 적었다.

‘과르디올라답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평소보다 전진을 자제하는 안정 지향적인 축구를 했다. 공간을 지배하는 점유율 중심의 축구를 구사하는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철학과 반대된다.

맨시티는 10일 영국 런던 토트넘홋스퍼 스타디움에서 토트넘과 가진 2018-2019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0대 1로 패했다. 과르디올라 감독 부임 이후 토트넘을 상대로 3승 1무 1패의 호성적을 이어가던 맨시티로서는 시나리오에 없던 이변이었다.

결과뿐 아니라 경기 내용 면에서도 약간의 의문부호가 있었다. 평소처럼 강도 높은 전진 압박을 하지 않았다. 파비안 델프의 기용과 같은 선수단 조합의 문제도 그랬다. 과르디올라 감독의 사령탑 시절 전체를 통틀어도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소극적인 경기 운영을 펼쳤다. 상당히 신중하게 경기에 임했다는 얘기다.

과르디올라의 달라진 축구

과르디올라식 축구는 높은 지점에서부터 수비를 시작한다. 2선 공격수는 물론이고 최전방 스트라이커까지 상대 후방 빌드업을 방해하는데 가담하는 편이다. 높은 점유율을 바탕으로 한 역동적이고 빠른 수비, 빠른 전진 압박. 과르디올라 감독의 축구 철학으로 대표된다. 소유권을 잃는다면 미드필더 진영에서부터 곧바로 강력한 압박을 넣어 되찾아오려는 시도를 펼친다. 전술의 완성도를 위해 체계적인 조직력과 넓은 시야를 갖추기 위한 훈련을 반복한다. 그런 팀을 상대로 중원에서 공격 대 공격 맞불을 놓기란 쉽지 않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감독도 이를 의식했다. 과르디올라 감독과의 대결에서 3연패를 거두며 전술적 패배를 거듭하고 있던 상황에서 맨시티의 수비적인 약점을 역습에서 찾고자 했다. 포체티노 감독 역시 점유율을 중요시하는 편이나 맨시티를 상대로는 이를 포기했다. 라인을 좁게 유지하며 포백 수비의 지역방어 체제로 나섰다.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출전한 크리스티안 에릭센 역시 공격 비중을 낮추고 중앙에서의 볼 배급에 초점을 뒀다. 손흥민도 2선에서 카일 워커와 니콜라스 오타멘디로 이어지는 패스 루트를 견제하는 데 집중했다. 초반부터 잦은 스위칭 플레이를 가져가던 손흥민과 에릭센은 전반 중반이 넘어서자 아예 위치를 바꿨다. 맨시티에 당한 지난 패배의 복기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전방 압박에서 맞불을 놓는 것은 부담이 크다는 점이었을 테다.

포체티노 감독이 들고 나왔던 수는 예상 가능한 범위에 있었다. 홈에서 열리는 1차전인 만큼 후방에 무게중심을 두면서도 공격적인 상황에서는 과감하게 전진했다. 상대 미드필더들이 일차적인 압박을 위해 하프라인 윗선까지 올라오면 그 배후 공간을 노릴 생각이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맨체스터 시티 공격수 세르히오 아구에로가 10일 영국 런던 토트넘홋스퍼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토트넘과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동료를 바라보고 있다. 게티이미지

그러나 맨시티는 평소와 다른 축구를 했다. 2차전 홈경기에서 공격적인 승부수를 두려는 계산이었는지 비교적 수비적인 운영을 펼쳤다. 뒷공간에 공백이 생길 것을 경계했다. 이는 양측 윙백으로 나선 파비안 델프와 카일 워커의 소극적인 오버래핑 움직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델프는 측면을 오가는 해리 케인과 손흥민을 견제하는 데 집중하며 공격상황에서도 좀처럼 과감히 전진하지 않았다. 무리하게 상대 2선 지역까지 침투해 일차적인 압박을 시도하다 역습을 허용할 것을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눈여겨볼 점은 4-2-3-1 포메이션이 실점 이전 상황까지는 정제된 채 유지됐다는 점이다. 전방과 측면, 2선까지 활발하게 오가는 자유로운 움직임이 허락된 것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선 다비드 실바가 전부였다. 나머지는 평소보다 훨씬 제한된 움직임을 가져갔다. 두 명의 홀딩 미드필더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소 스타일대로라면 맨시티 선수들은 전체적으로 적극적인 전진을 하는 편이다. 공격 상황에서 구사할 수 있는 루트를 다양화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날은 고정된 움직임을 가져가다 보니 상대 진영에서 볼 소유권을 갖고 있을 때도 움직임이 평소보다 훨씬 단조로웠다. 후방 센터백 라인도 상당히 정적이었으며, 에데르송 골키퍼는 상대 공격수들의 압박이 없는 상황에서도 종종 롱킥을 시도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의 경기 운영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다.

양쪽 측면 공격수로 출전한 리야드 마레즈와 라힘 스털링은 후방에 무게중심을 둔 토트넘 미드필더진들에게 일차적인 압박을 하고자 했다. 스털링은 볼을 잡으면 중앙으로 움직이는 드리블 돌파를 보였고, 마레즈는 전방 공격수로 나선 세르히오 아구에로와 다른 2선 공격수들의 연계에 집중했다.

끌어내려고 해도 좀처럼 끌려 나오지 않으니 토트넘의 양측 풀백으로 나선 대니 로즈와 키에런 트리피어로서는 평소보다 쉬운 경기를 펼칠 수 있었다.

토트넘 홋스퍼 공격수 손흥민이 10일 영국 런던 토트넘홋스퍼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맨체스터 시티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볼의 방향을 돌려놓고 있다. 게티이미지

델프의 기용과 고립된 아구에로

경기를 앞두고 관심을 모았던 것은 왼쪽 풀백으로 나설 선수가 누구냐는 것이었다. 이번 시즌 왼쪽 측면에서 공수 모두 준수한 활약을 펼쳤던 올렉산드르 진첸코는 햄스트링으로 당분간 출전이 불가했다.

최근 과르디올라 감독은 왼쪽 측면수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으로 보인다. 벵자민 멘디와 델프를 로테이션으로 기용하며 몇 차례 실험적인 운영을 한 것에서 그러한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지난 7일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펼쳐졌던 브라이튼과의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4강전에서는 멘디가 나섰으나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델프의 활약은 좋지 못했다. 에므리크 라포르테와의 패스루트 공략에 나선 손흥민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손흥민에게 허용한 슛만 4개였다. 실점 과정에서도 델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후반 33분 에릭센의 침투 패스를 받은 손흥민과 동일 선상에 있었지만, 상대 동작에 속으며 득점을 내주고 말았다. 손흥민의 퍼스트 터치가 길어 슛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는 점에서 델프의 수비에 아쉬움이 있었다.

케인이 쉬지 않고 좌우 측면을 오가는 데다 손흥민이 중앙으로 좁혀오다 보니 라포르테와 비대칭적인 전진을 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후반전 다비드 실바는 전반보다 볼 점유율을 높이며 우측 지향적인 움직임을 가져갔다. 델프를 향한 토트넘의 압박을 조금이나마 위쪽으로 끌어올리려는 계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맨시티 팬들로서는 부상으로 이탈한 진첸코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델프와 함께 부진이 두드러졌던 이는 아구에로다. 아구에로는 침묵했다. 득점뿐 아니라 전방에서의 압박 타이밍도 좋지 못했다. 스털링이 트리피어와의 일대일 구도에서 그나마 우위를 점하긴 했지만 아구에로는 달랐다. 토비 알더베이럴트와 얀 베르통언으로 이어진 토트넘의 중앙 센터백 라인은 아구에로를 이겨내고 전방의 빈 곳으로 스루패스를 시도했다. 맨시티의 포백라인이 정제돼 있던 점에는 아구에로의 부진으로 토트넘 미드필더들의 공간을 제한하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앞선에서 볼 소유권을 뺏겼을 때 후방으로 돌아오는 속도가 빨라지다 보니 센터백들의 공격적인 전진도 위축된 정황으로 볼 수 있다. 아구에로가 토트넘의 후방 빌드업을 전혀 통제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최전방 공격수가 압박 타이밍 시점을 잡지 못했을 때의 대안은 추후 맨시티가 전술적으로 풀어내야 하는 숙제로 보인다. 과르디올라 감독 역시 이를 인지하고 후반 26분 가브리엘 제수스로 교체했다. 무엇보다 위고 요리스 골키퍼에게 방향을 읽히며 전반 13분 가장 중요한 페널티킥을 놓쳤다.

아구에로의 페널티킥 실축에서 알 수 있듯 과르디올라 감독에게 불운이 따랐던 것은 사실이다. 포체티노 감독으로서도 적잖이 당황했을 법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그간의 비슷한 전략과는 다른 수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아구에로가 득점에 성공하며 1대 0으로 경기를 끝마치는 것이 맨시티에는 최상의 시나리오였을 것이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아구에로의 킥 장면을 보지 않고 고개를 옷자락에 파묻었다. 깊숙이 고개를 숙였던 그 순간, 룰렛을 돌릴 때와 같은 긴장감 이외에 또 다른 감정이 있었다면 전략적 수정에 대한 고민도 한 가닥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경기의 흐름을 봤을 때 요리스의 페널티킥 선방이 없었더라면 맨시티와 과르디올라 감독으로서는 더 파격적인 수비적인 운영을 봤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과르디올라 감독은 0-1로 끌려가는 와중에도 시스템 수정을 하지 않았다. 스털링과 마레즈는 항상 그랬듯 경기 내내 하프라인을 넓게 벌려 섰고, 손흥민과의 경합에서 어려움을 겪은 델프 대신 워커를 중심으로 오른쪽에서 주로 볼 전개를 했다. 정규시간 종료 1분 전이 돼서야 두 번째 교체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한 점 차 승리를 챙기긴 했으나 포체티노 감독의 전술적 승리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유기적인 포지션 스위칭을 통해 상대 수비진의 마킹 체제에 혼선을 주는 등 인상적인 부분은 있었지만 토트넘도 중앙에서 전개되는 공격에 있어서는 경기 내내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른 시간 다친 케인을 교체해야 하는 예상 범위 밖 변수도 있었고, 겹겹이 형성된 맨시티 수비블록에 애를 먹었다. 전체적으로 공격에서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졌던 호흡이 완벽하게 들어맞지는 않았다.

맨시티의 접근법은 경기를 점유하진 못했지만, 실점 상황을 제외하면 수비적인 안정감에서는 나쁘지 않았다. 애초 경기 목표가 기선제압이 아닌 2차전에서의 승부수를 위한 포석 정도였다고 생각하면 한 점 차 승부는 나름의 실리를 택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결과가 최선이 아니었을 뿐 경기는 우리가 지배했다”는 과르디올라 감독의 항변에서 다소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그래서다.

토너먼트로 진행되는 1·2차전 승부는 180분이다. 절반이 지난 시점에서 토트넘은 단 한 점 차 앞서고 있을뿐, 진출을 낙관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다음 승부의 장소는 맨시티가 극히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홈구장 에티하드 스타디움. 유럽의 주요 도박업체들은 맨시티가 0대 1로 끌려가는 상황에서도 그들의 4강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안방에서 역전시키기 위한 공격적인 수를 들고 나올 것이다. 그게 바로 진짜 과르디올라의 축구다. 포체티노 감독과 토트넘의 진짜 고비는 아직 시작 전이다.

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 전광판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송태화 기자가 함성소리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전하는 스포츠 연재입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