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 득점하면 라커룸에 들어가서 샤워를 한 뒤 경기가 끝나기를 기다려야겠다.”
지난 2월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독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2018-2019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을 끝낸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홋스퍼 감독의 말이다. 당시 토트넘은 독일 분데스리가 선두를 질주하던 도르트문트를 3대 0으로 꺾었다. 손흥민은 팀의 두 번째 골이자 경기의 쐐기골을 터뜨렸다.
포체티노 감독이 그때 했던 말은 그저 막연한 농담이 아니었다. 토트넘에 유효한 ‘공식’이 생겼다. ‘손흥민이 득점하면 토트넘은 승리한다.’ 토트넘은 손흥민이 득점한 최근 15경기에서 승리했다. 이 공식은 천적으로 평가되는 맨체스터 시티에까지 통했다.
토트넘은 10일 영국 런던 토트넘홋스퍼 스타디움에서 맨시티와 가진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1대 0으로 승리했다. 손흥민의 결정력이 빛을 발했다. 답답한 흐름 속에 찾아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후반 32분, 페널티박스 우측에서 델프를 제친 후 강력한 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상대 골키퍼 에데르송이 재빠르게 손을 뻗었으나 막아낼 수 없었다.
토트넘으로서는 손흥민의 득점이 유독 반가울 수밖에 없다. 손흥민의 득점은 승리를 부르는 ‘시그널’이 됐다. 올 시즌 토트넘의 흐름을 살펴보면 승리했던 경기에서 대부분 손흥민이 펄펄 날았다. 반면 컨디션 난조를 보이며 부진했던 경기에서 토트넘은 제힘을 쓰지 못했다.
지난해 말 상승세를 달리며 토트넘이 우승레이스에 뛰어들었을 때였다. 손흥민이 매 경기 골 폭죽을 터뜨렸다. 2019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시안컵을 마치고 토트넘에 복귀한 뒤에도 그랬다. 간판 공격수 해리 케인이 약 한 달여간 이탈하며 위기가 찾아올 것으로 예상했으나 기우였다. 손흥민이 연속골을 터뜨린 4경기에서 토트넘이 모두 승리의 주인공이 됐다.
최근 토트넘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부진 속에는 손흥민의 침묵도 있었다. 1대 2로 패했던 지난 2월 23일 번리전을 시작으로 지난 1일 리버풀전까지 5경기 연속 무승(1무 4패)의 늪에 빠졌다. 케인이 연속골을 가동해도 팀이 승리를 거두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 지속됐다.
상황은 반전됐다. 손흥민은 구단 개장 경기였던 지난 4일 크리스탈 팰리스전에서 역사적인 1호 골을 터뜨리더니, 맨시티에 마저 비수를 꽂았다. 손흥민의 맹활약 덕에 토트넘은 1962년 이후 처음으로 유럽권 대항전 4강 진출의 기대감을 키웠다. 손흥민은 토트넘 경기장 개장 1호 골에 이어 2경기 연속 골을 터뜨리며 팀 역사의 일부가 됐다.
케인은 맨시티와의 경기에서 왼쪽 발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부상은 작지 않아 보인다. 포체티노 감독이 직접 시즌 아웃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을 정도다. 케인이 없는 이상 토트넘으로서는 행운과도 같은 손흥민의 득점 공식을 이어가고 싶을 수밖에 없다. 손흥민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