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P는 유치원 때부터 행동이 산만하다는 말을 들어왔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선생님들이 ‘수업 태도가 안 좋아요’ ‘장난이 심해요’ ‘자세가 좋지 않아요’ 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엉뚱하지만 창의적이예요’ ‘머리가 좋아서 수업은 듣지 않는데 물어보면 다 알고 있어요’ 라는 말에 위안했다.
그러나 ‘친구들이 귀찮아하고 피하려 하네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고학년이 되면서는 ’어려운 문제는 맞추는데 쉬운 문제에 실수해 점수가 형편 없어요’ ‘친구들과 대화 할 때 가끔 뜸금없는 얘길 한다며 친구들이 대화가 안된다고 하네요’ ‘순진한데 가끔 욱해서 화를 폭발해요’라는 지적을 받았다.
6학년이 되자 집에서도 화를 많이 내고 반항적으로 변했다. 어릴 때처럼 산만하지는 않았지만 숙제를 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엄마를 화나게 하였다. 급기야 폭력성이 나타나 컴퓨터 게임을 못하게 하는 엄마를 힘으로 밀치기 시작했다. 어려서도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를 의심해 보기도 했지만 ‘설마 엄마, 아빠가 멀쩡한데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어’하는 생각에 미루고 있다가 이제는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거 같아 병원을 찾았다.
P의 부모가 치료를 미뤄온데는 ‘ADHD는 약물치료를 한다는데 어린아이에게 약을 먹게 하는 게 아이 몸에 괜찮을까’ ‘중독되어 평생 끊지 못하는 건 아닐까’ ‘뉴스나 신문 보도를 보면 강남에선 공부 잘하게 하는 약으로 오인되어 극성 부모들이 ADHD 약을 쓴다는 데 그래선 안되지’ 하는 여러 마음이 교차했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정신과 약물치료에 대한 오해나 편견이 많다. ‘약을 먹으면 멍해지고 잠만 자고 중독된다’는 두려움이다. 하지만 이는 80년대 이전의 얘기다. 정신과 약물 영역은 21세기 들어와 가장 급격히 발전한 분야여서 심지어 조현병 약물도 이전의 부작용을 많이 없앴다. 하물며 ADHD 약물치료는 얼마나 발전 했겠는가? 중독성, 습관성 당연히 전혀 없다. 평생 약 먹을 필요도 없다. 식욕부진, 메스꺼움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이미 알고 있는 부작용이라 대처하면 되고 다른 약으로 교체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ADHD 진단받으면 모두 약물치료를 하는가? 그건 아니다. 증상의 정도나 강도에 따라 치료법이 조금씩 달라진다. 정도가 약하고 생활에 큰 지장이 없으면 먼저 비약물 치료를 시도해 보기도 하고, 연령에 따라서는 전두엽이 성숙되는 시기까지 기다려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계획은 반드시 정확한 전문가의 평가 후에 결정해야 한다.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부모가 결정해서 ‘비약물 치료를 해보다가 안 되면 약물치료 하자’라고 판단하는 건 자칫 불필요한 치료만 하다 치료시기를 놓치게 된다.
ADHD는 약물치료가 도움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 ADHD 약물치료는 부산하게 움직이는 과잉행동을 줄여 준다. 숙제, 공부와 같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할 때도 오래 앉아 집중하게 해준다. 일의 정확도가 높여 실수가 줄여준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주의 깊게 듣게 해 준다. 충동성을 줄여주어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게 해주고 분노 폭발을 줄여준다. 이전보다 규칙을 잘 지키게 해 준다.
하지만 약물치료가 도움을 주지 못하는 영역도 존재한다. 예컨대 바람직한 행동을 배우는 것, 예전의 못된 버릇을 없애주는 것, 자신을 반성하고 되돌아보게 하는 면, 떨어진 학업을 보충하는 것, 부족한 사회적 기술을 습득하는 것,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말로 조리 있게 표현하는 것, 성취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는 면 등은 약물치료 보다는 비약물 치료가 도움이 되는 영역이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