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토트넘 홋스퍼 수비수 대니 로즈가 모처럼 웃음을 지었다. 홈구장에서 거둔 뜻깊은 승리 덕이다. 토트넘은 10일 영국 런던 토트넘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2019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1대 0으로 승리했다. 로즈는 풀타임 소화하며 힘을 보탰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실리적인 카드를 꺼냈다. 해리 케인이 최전방에서 공격을 지휘했고 델레 알리와 크리스티안 에릭센, 손흥민이 뒤를 받치는 4-2-3-1 포메이션으로 나섰다. 홈경기인 만큼 후방에 무게중심을 두는 가운데도 중원 장악력을 잃지 않았다. 에릭센은 오른쪽 윙 포워드로 출전했지만 중앙지향적인 움직임을 선보였고, 손흥민과 잇따라 스위칭 플레이를 선보였다.
역습에서 맨시티의 수비적인 약점을 찾고자 했기에 윙백들의 활약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 로즈도 이를 의식하고 있었다. 경기 초반부터 과감하게 전진했다. 상대 수비수들을 유인하기 위해 측면으로 움직이는 케인과 연계를 통해 직접 슛을 시도하기도 했고, 위협적인 크로스도 수차례 날렸다. 옛 동료인 상대 우측 풀백 카일 워커와의 윙백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가슴 철렁했던 순간도 있었다. 전반 9분, 중앙으로 들어오는 라힘 스털링의 드리블을 태클로 막아내는 과정에서였다. 볼이 로즈의 왼팔에 맞았다. 주심은 비디오판독(VAR)으로 상황을 다시 지켜본 후 고의성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로즈에게 옐로카드를 꺼내듬과 동시에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로즈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그라운드에 주저앉았다.
행운의 여신은 토트넘 손을 들었다. 골키퍼 위고 요리스가 키커로 나선 세르히오 아구에로의 슛 방향을 정확히 읽어냈다. 오른쪽 중앙으로 파고든 아구에로의 슛은 요리스의 손을 맞고 튕겨 나갔다. 로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요리스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패배의 원흉이 될 수 있을 법했던 상황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간 셈이다.
로즈는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함께 양측 풀백으로 호흡을 맞춘 키에런 트리피어는 스털링과의 공수 맞대결에서 판정패했다. 스털링의 중앙으로 들어오는 공격적인 움직임을 제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트리피어의 전진이 더뎌진 가운데 로즈는 달랐다. 과감하게 오버래핑을 하지 않는 상대 풀백들을 상대로 측면으로 전환되는 역습 상황에서 공격의 선봉장 역할을 맡았다.
본업인 수비에도 충실했다. 전반 26분 리야드 마레즈의 위협적인 오른발 슛을 차단하는 등 지역 방어체제에서 자기 진영을 확실하게 지켰다. 선발로 나선 아구에로와 마레즈는 로즈와의 일대일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프리키커를 자처할 정도로 발 감각도 살아 있었다.
결국 로즈의 보이지 않던 분투는 결실을 보았다. 손흥민이 해결사로 나섰다. 답답한 흐름 속에 찾아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후반 32분, 페널티박스 우측에서 델프를 제친 후 강력한 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이후에도 로즈는 공격과 수비를 오가며 경기 내내 쉴 새 없이 뛰었다.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펼쳤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로즈의 굳어진 표정에 마침내 희색이 감돌았다. 최근 토트넘의 부진한 흐름에서 원흉으로 지목됐던 그였다. 인종차별 문제에도 시달렸다. “5~6년 정도 지난 후 축구계를 떠나고 싶다”는 그의 말에서 심리적 불안감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랬던 로즈였기에 활약이 더욱 반가웠다. 자신을 옥죄어 오는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분명한 특효약은 ‘승리’였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