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홍콩 ‘우산혁명’에 복수?…시위 지도자 9명 유죄

입력 2019-04-09 20:07
'오큐파이 센트럴' 운동을 주도했던 추이우밍(오른쪽부터) 목사, 베니 타이 홍콩대 교수, 찬킨만 홍콩중문대 교수가 9일 홍콩 웨스트카우룽 법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법원은 세 사람이 시위대를 동원해 공공질서의 큰 타격을 줬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AP뉴시스


2014년 홍콩 민주화 시위 ‘우산 혁명’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에게 결국 유죄가 선고됐다. 이번 판결은 중국이 민주화를 요구했던 홍콩 주민들에게 복수로 답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산 혁명에서 중국 일국양제(一國兩制·1국가 2체제)의 허점을 세계에 알렸던 홍콩 시민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홍콩 웨스트카우룽 법원은 9일 홍콩 우산 혁명을 주도한 시민활동가 9명에게 공공소란죄 등의 혐의를 적용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고 영국 BBC방송이 보도했다. 유죄 판결을 받은 인사 중에는 찬킨만 홍콩중문대 교수, 베니 타이 홍콩대 교수, 추이우밍 목사도 포함됐다. 세 사람은 2013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홍콩 업무 중심지구를 점거하는 ‘오큐파이 센트럴’ 운동을 주도했다. 이 운동 참가자들은 2014년 학생들과 힘을 합쳐 우산 혁명을 주도했다.

홍콩 우산혁명 시위를 이끈 조슈아 웡(왼쪽 세번째)과 베니 타이(왼쪽 네번째) 홍콩대 교수가 2014년 10월 노란 우산을 든 채 구조물 위에서 집회를 주도하고 있다. 우산혁명 시위 주요 지도자들 중 다수가 구금된 후 재판을 받았다. AP뉴시스


검찰은 우산 혁명 시민 지도자들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시위대를 동원해 도심의 주요 고속도로를 봉쇄하는 등 공공질서에 큰 피해를 줬다고 주장했다. 사건을 담당한 조니 찬 판사는 유죄 판결 이유에 대해 “부당한 질서에 저항하는 시민 불복종의 개념을 인정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혐의를 무효로 할 순 없다”고 말했다.

법원은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형량은 밝히지 않았다. 다만 찬킨만, 베니 타이, 추이우밍 등 3명은 최대 7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니 타이 교수는 법정 출석에 앞서 취재진에게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리는 계속 싸울 것이며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산 혁명은 2014년 8월 31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홍콩 행정장관 선거안을 발표하면서 촉발됐다. 전인대는 행정장관 입후보 자격을 친중국계로 구성된 후보 추천위원회의 과반 지지를 얻은 인사로 제한했다. 이에 반발한 홍콩 시민들이 행정장관 선거의 완전 직선제 등을 요구하면서 79일 동안 시위를 벌였다. 우산 혁명에는 한때 10만명 이상이 참가했다. 홍콩 당국이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최루탄을 쏘자 시위대가 노란 우산을 쓰고 시위를 계속하는 모습이 전해지면서 우산 혁명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우산 혁명의 문제의식은 곧 홍콩 사회의 전반의 불평등 문제로 확대됐다. 홍콩 시민들은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후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까운 광둥성 등 중국 지역에 비해 경제 성장이 더디다는 것이다. 특히 주택난과 일자리 부족에 시달린 젊은층의 불만이 더했다. 시민운동가 조슈아 웡은 17살에 우산 혁명 지도자로 떠올라 이후 정치계에 입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위가 길어지면서 곧 동력을 잃고 강제해산됐다. 시민 200명 이상이 기소됐고, 이 가운데 상당수가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됐다. 이후 시위 지도자에 대한 구금과 재판이 이어졌다. 1997년 중국에 반환되기 직전 홍콩 총통을 지낸 크리스 패튼은 시위 지도자들에 대한 재판에 대해 “2014년 벌어진 정치적 시위를 복수하기 위해 시대착오적인 관습법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