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집의 시간을 잇는 마음으로 한옥을 수선했습니다” 이현화 혜화1117 대표

입력 2019-04-09 14:13
이현화 혜화1117 대표가 최근 서울 종로구 자택 안방에서 문을 열고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아침마다 이 문으로 하늘을 본다. 최종학 선임기자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대다수가 아파트에 살다보니 고즈넉한 한옥에 사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런 도시인의 로망을 실현한 이현화(49) 도서출판 혜화1117 대표를 최근 자택이자 사무실인 서울 종로구 아담한 한옥에서 만났다. 이 대표는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한옥에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나무 향이 은은한 집에는 바흐의 성가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이태 전 여름 1936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작은 한옥(대지 85㎡·건물 52㎡)을 사고 지난해 봄부터 집을 고쳤다. 1994년부터 출판사 편집자로 일을 시작한 그는 직장 생활 4년차에 다세대 주택 방 한 칸짜리 집에서 처음 독립을 했고 월세와 전세를 거쳐 마지막으로 경기도 고양 일산의 작은 아파트(73㎡)에 살았다.

이 대표가 산 한옥. 수리 전의 모습이다. 혜화1117 제공 ⓒ황우섭

이 대표는 “아파트 대출금을 다 갚고 나니 마흔 전후였다. 노후엔 다른 사람이 만든 책을 팔면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편집자로 살다가 책방 주인이 된다는 게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때부터 여행 삼아 집값이 싼 지역으로 집을 보러 다녔다”고 했다. 그러다 서울 시내 오래된 동네에서 이 집을 만났다. 아파트에서 나와 그동안 모은 돈을 보탰다.

한옥을 한참 수리하는 중이다. 혜화1117 제공 ⓒ황우섭


옛집의 시간을 잇는다는 생각으로 낡은 것을 가능하면 썼다. “사실 다 허물고 짓는 건 더 쉽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집이 가진 시간과 역사성을 살리고 싶었다. 기둥을 살리고 구들로 쓴 돌을 마당으로 내고 오래된 기와를 그대로 썼다. 이 집에 있던 유리도 여러 문에 되살렸다”고 했다. 무늬가 새겨진 유리문을 가리키며 애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집을 지으면서 배운 것도 있다. “나름 편집자로 철저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저 서까래 간격이 똑같은지 종이를 대보고, 담장 쌓는데 돌 간격이 바르지 않은지 살폈다. 근데 어느 순간 집 짓는 그분들도 다 최선을 다해 하고 있더라. 창호 하시는 분은 ‘20년 연장도 들 줄 모르는 애송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다 수리한 한옥 모습을 밤에 촬영했다. 혜화1117 제공 ⓒ황우섭


이어 “나도 이제 25년 정도 책을 만들었으니 그 분 기준에 애송이에 불과하다. 교정지 줄 간격 맞추듯 집을 짓기 바라는 게 내 고집과 편협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며 웃었다. 이 대표는 지금 한옥에서의 삶에 만족한다. “아파트는 실용적인 도구라는 느낌이라면 한옥은 정서적 교감의 공간이란 마음이 든다. 세월을 쌓아가는 동반자 같다. 한옥에는 계속 손이 가고 집을 이루는 나무는 시간에 따라 뒤틀리면서 조금씩 움직인다”고 했다. 불편도 적지 않다. “비가 오면 물이 막히지 않는지 잘 살펴야 한다. 추울 땐 별채에 물건 가지러 갈 때도 파카를 입고 목도리를 싸매고 가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가 산 한옥의 옛 창호. 그는 이 집에 있는 유리 무늬가 마음에 들었고 살리고 싶었다. 혜화1117 제공 ⓒ황우섭


그는 한옥에 살고 싶다면 전세나 월세로 일정 기간 지내보고 살 것을 권유했다. “내 고향은 전주이고 남편과 나는 한옥에 지낼 기회가 제법 있었다. 한옥에 사는 건 생각보다 불편이 많다. 또 투자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거래하기도 쉽지 않다. 살아본 뒤 이런 모든 걸 감수할 각오를 하고 사야한다”고 조언했다.

수리한 한옥의 창호. 옛집의 유리를 그대로 살려 창호를 만들었다. 혜화1117 제공 ⓒ황우섭


이 대표는 황우섭 사진작가와 함께 한옥을 고치는 이야기를 신간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에 담았다. “책이 나오고 나니 진짜 나의 집이 된 느낌이다. 아파트는 관청에 가서 등기를 하면 자기 집이 되는데 이 한옥은 고치는데 워낙 시간과 공이 많이 들었다. 책을 쓰는 동안 이 집과 내가 섞이면서 하나가 된 것 같다”고 했다. 편집자다운 경험이다.

책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표지. 사진 황우섭, 글 이현화. 혜화1117 제공


집에서는 지내는 건 어떤지 궁금했다. “겨울에 좀 추웠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 안방 문을 열고 하늘을 보면 참 좋다. 밤에 고요한 시간도 좋다. 이 집에 살면서 비염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는 집을 고치면서 1인 출판사 혜화1117을 차렸다. “내가 아무래도 책 만드는 일을 아직 너무 좋아한다. 집을 사면서 편집자로서 독립도 결심했다”고 했다. 그의 책은 인테리어 북이 아니다. 역사와 공간성을 존중하는 태도로 집 한 채를 찬찬히 수리하는 과정을 담은 교양서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