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트(duct)는 공기 또는 가스의 송기 및 환기용 관로를 말한다. 우리말로 풍도(風道) 또는 풍도관(風道管)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안 대표는 요즘 보트사업에도 열중하고 있다. 취미로 보트에 관심을 가지다 그 매력에 흠뻑 빠져 지금은 부업으로까지 발전시켰다. 보트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그는 “앞으로 보트를 직접 만들어서 기존 시장에 도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성장과정은 어땠나.
“어렵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갈 여건이 안 돼 바로 군에 입대했다. 그런데 군대생활을 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대학생이 귀할 줄 알았는데 전우들 대부분이 대학생활을 하다 휴학한 상태였다. 그들과 생활하면서 자존심이 상한 것은 물론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제대하자마자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진학했다. 오전에는 아버지 공장에서 일을 돕고, 오후에는 용호동에서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직접 고기를 썰면서 일을 도와드렸다. 일을 마치고 나면 학교로 쫓아가는 등 전형적인 주경야독을 했다. 하루 24시간을 48시간처럼 쓰면서 생활했다.”
-회사 경영은 언제 어떻게 하게 됐나.
“대학을 졸업하고 조금씩 가정형편도 나아졌다. 아버지가 대저동에 공장을 구입하면서 사업도 좀 활기를 띠는 듯했다. 그런데 그때 문제가 생겼다. 아버지가 사업차 출장을 가시다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를 심하게 다쳐 거동이 불편해지셨다. 그 뒤 급하게 대표이사가 돼서 친동생과 함께 회사 경영을 맡게 됐다. 당시만 해도 회사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가족 중에서도 어른들이 없었기에 주위에 물어볼 사람도 없어 너무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직원들에게 이리저리 물어봐가면서 일을 해나갔다. 동생과 함께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운영해왔다. 언제 어디서든 회사생각만 했고, 무슨 일이든 늘 최선을 다했다. 그러면서 회사 경영에 눈을 떠갔고 조금씩 자신감도 얻었다. 공장을 구입하면서 졌던 빚을 10여년 정도 걸려서 다 갚아나갔다.
-어떻게 보트를 접하게 됐나.
“아버지가 낚시를 좋아하셔서 동생이랑 같이 자주 낚시를 다녔었다. 당시엔 형편이 좋지 않아서 노 젓는 배로 바다로 나가 낚시를 하면서도 그게 너무 좋았다. 그러면서도 주위의 모터가 달린 멋진 배를 보면서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꼭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배를 사고 싶다는 꿈을 계속 품어 왔다. 그러다 마침내 꿈을 이뤘다. 어렵기만 한 사업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한 우물만 판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한 끝에 부채를 다 갚을 때쯤 2000만원 정도를 들여 작은 보트를 한 개 사게 됐다. 이후 그보다 더 큰 보트를 사야겠다는 꿈을 품었다가 그 꿈도 이뤘다.”
-보트사업을 하게 된 계기는.
“보트를 타면서 좀 더 큰 보트를 사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던 중 전남 여수에 갔다가 마음에 꼭 드는 배를 보게 됐다. 그 보트를 가지면 세상 부러울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구입하고 말았다. 그래도 욕심은 채워지지 않았다. 더 큰 배를 갖고 싶은 생각에 동생과 함께 여기저기 보트를 보러 다니다 한 보트 수입회사를 알게 됐다. 그 회사 관계자와 교류하면서 보트사업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중 미국에서 배를 한 척 샀다가 얼마 뒤 열린 보트쇼에서 그 배가 바로 팔렸다. 그때 보트사업을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입도 수입이지만 보트사업을 하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계기로 보트를 사고팔면서 지금은 작으나마 보트사업을 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포부를 갖고 있나.
“지금 ㈜한성공조산업을 본업으로 하고 있지만, 배를 사고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보트를 만들고 싶다. 우리나라에는 레저보트라 할 만한 것이 정말 적다. 현재 작은 보트시장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조금만 보트 사이즈가 커지면 중국에서 몰드를 수입해서 액세서리를 붙이는 수준이다. 3000평 정도 공장부지를 조성해 배를 만들어 테스트를 하고 판매까지 하는 사업을 한번 해보고 싶다. 언젠가는 큰 보트를 직접 만들어 주위 친한 사람들과 함께 타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이은철 기자 dldms878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