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도 과하면 독… 풀럼의 프리미어리그 실패기

입력 2019-04-08 21:00
풀럼 공격수 안드레 쉬얼레. 게티이미지

선수 영입에만 무려 9800만 파운드(약 1462억원)를 쏟아부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승격과 동시에 중위권 도약을 노리겠다는 분명한 의지는 투자에서 드러났다. 여러 출중한 선수들을 거액에 영입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프리미어리그 33경기를 치르며 단 4번의 승리를 거두는 데 그쳤다. 시즌 종료까지 5경기가 남아있지만 전승을 거둬도 잔류는 불가능하다. 19위에 위치한 풀럼 얘기다.

지난 시즌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리그)에서 올라오기까지 풀럼의 여정은 쉽지 않았다. 플레이오프를 거쳐 천신만고 끝에 처절한 승격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2013-2014 시즌 이후 4년 만에 프리미어리그로 돌아온 그들은 다시 강등되지 않기 위해 투자를 거듭했다. 지난해 여름 이적 시장에서 무려 12명의 선수를 영입했다.

선수단의 면면도 화려했다.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임대로 머물던 루시아노 비에토를 데려왔고, 스페인 FC바르셀로나와도 연결됐던 장 미첼 세리를 영입했다.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공격적인 보강은 계속됐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독일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안드레 쉬얼레를 비롯해 알렉산더 미트로비치와 잠보 앙귀사 등 선수단 보강에 공을 들였다. 선수 개개인만 놓고 보면 풀럼의 중위권 도약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파격적인 투자가 호성적으로 직결되는 것은 최근 축구 산업에서 이적료 인플레이션을 불러일으켰던 가능성 큰 명제이기도 했다.

지난 2일 왓포드와의 2018-2019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실망한 팬들이 '풀럼 강등'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과하면 넘치는 법이다. 풀럼이 그랬다. 일면식도 없던 선수들 사이에서 시너지를 끌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예상과 다르게 선수단 조합에 어려움을 겪었다. 승격을 이끌었던 기존의 주축 선수들이 대부분 바뀌다 보니 시즌 초부터 조직력이 삐거덕댔다. 비에토와 쉬얼레 역시 이름값을 증명하지 못했다. 그나마 미트로비치가 10골을 기록하며 제 몫을 해줬으나 다른 이적생들의 활약은 초라했다. 2200만 파운드(약 298억원)의 이적료를 기록했던 앙귀사는 부상과 부진을 반복하며 고작 리그 17경기 출전에 그쳤다.

풀럼의 붕괴된 조직력은 실점 기록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프리미어리그 33경기를 치르며 무려 76실점을 내줬다. 매 경기 2.3골씩 허용한 셈이다. 유럽 5대 리그 전체로 확대해도 70골 이상 실점한 팀은 풀럼이 유일하다. 공격적인 투자가 독이 됐다.

구단은 시즌 초 부진을 거듭하자 승격을 이끌었던 슬라비사 요카노비치 감독에게 책임을 물어 경질했지만 ‘소방수’로 투입됐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역시 한번 타오른 불을 끌 수는 없었다. 선수들의 동기부여는 이미 바닥을 쳤고, 결국 분위기 쇄신에 실패했다. 결국 라니에리 감독까지 경질한 후 1980년생의 젊은 감독 스콧 파커에게 지휘봉을 넘겨줬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최근 13경기 중 12경기에서 패배하는 굴욕을 맛봤다. 승격 1년 만에 챔피언십으로 돌아가게 됐다.

사히드 칸 구단주는 강등이 확정된 뒤 “지난 3개월 동안 나와 구단의 모든 이들은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지난해 8월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를 받아들었다. 피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