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11일 형법의 낙태 처벌 조항의 위헌성 여부를 선고한다고 8일 밝혔다. 2012년 태아의 생명권 인정과 낙태 시술 증가로 인한 생명경시 풍조 우려로 낙태죄 합헌 결정을 낸 후 7년 만이다.
산부인과 의사 정모씨는 2013년 11월부터 2015년 7월까지 총 69회의 낙태 시술을 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1심이 진행되던 2017년 2월 8일 낙태죄 위헌 판단을 위한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오는 11일 정씨가 낸 헌법소원심판청구를 심리한다. 대상은 형법 269조 1항(자기낙태죄)과 형법 270조 1항(업무상 촉탁낙태죄)이다. ▲269조 1항은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적혀 있다. ▲270조 1항은 의사, 한의사 등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 승낙 없을 땐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쟁점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다. 낙태 행위를 죄로 규정하는 것이 이 권리를 침해하는지 판단할 예정이다. 정씨는 “낙태죄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임신과 출산의 시기를 결정할 자유를 침해하고, 안전한 수술을 받지 못해 건강권 역시 침해된다”고 주장했다. 평등권 침해 여지도 있다.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의 부담을 여성에게만 지우는 사회 풍조 때문이다. 또, 의사를 가중처벌하는 것 역시 평등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있다.
낙태죄 조항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있다. 현실적으로 낙태죄 처벌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고, 임신 초기 낙태를 포함해 모든 낙태를 동일하게 처벌하고 있으며, 모자보건법상 예외규정 범위가 지나치게 좁아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일부 낙태 허용 사유를 제외한 모든 낙태를 일률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기본권을 제한하는데 국가 작용의 한계를 두는 것)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법무부는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모든 태아를 생명권의 주체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낙태 증가와 생명 경시 풍조를 막기 위한 형사처벌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여성의 몸을 떠난 태아도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어 임신 초기 낙태를 허용하는 것은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한다는 설명이다. 생명권은 성장 정도와 무관하게 동일하게 보호받아야 하고, 낙태 허용 범위는 모자보건법에서 이미 규정하는 정도로 충분하며, 의사는 생명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직업군으로 가중처벌은 차별이 아니라는 주장도 내놨다.
앞서 헌재는 2012년 낙태죄에 대해 4대 4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지난달 30일 23개 시민사회단체 연대체인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낙태죄 위헌 결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권혜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사서분과장은 “어제(29일) KTX 화장실에서 탯줄이 그대로 달린 채 사망한 신생아가 발견됐고, 오늘(30일) 오전에는 아이를 낳은 뒤 유기해 숨지게 한 대학생이 자수했다”며 “이 대학생은 영아유기죄로 입건돼 2년 이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것이다. 피임을 요구할 권리가 제대로 보장됐다면, 그리고 임신을 알았을 때 당사자가 온전히 결정할 권리가 보장됐다면 비극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날 공동행동은 “우리는 낙태죄를 폐지할 것”이라며 “국가의 필요에 따라 여성의 몸은 통제하고, 징벌하며, 건강과 삶을 위협해온 역사를 종결할 것이다. 국가가 인구를 줄이기 위해 강제 낙태와 불임시술을 강요하다가 다시 저출산 해소라는 명목으로 임신을 중지하는 여성을 비난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기만적인 행태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전면 비범죄화 ▲포괄적 성교육과 피임 접근성 확대 ▲유산유도제 도입을 통한 여성건강권 보장 ▲우생학적 모자보건법 전면 개정 ▲낙인과 차별 없는 재생산권 보장 등을 요구했다.
유엔 인권이사회(HRC) 산하 ‘여성 차별 철폐 실무그룹’도 헌재에 ‘임신 중지의 범죄화는 그 자체로 차별적’이란 의견서를 제출했다. 공동행동은 “실무그룹은 여성의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은 여성의 평등권과 존엄성, 자율성 등을 포함한 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 권리를 위해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라며 “여성에게만 해당할 수 있는 행위의 범죄화는 그 차제로 차별적이며, 낙인을 유발하고 영속시킨다며 헌법재판소에 낙태죄 폐지 의견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