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국민연금 내에선 뒤숭숭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조 회장이 20년간 지켜온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는 데 있어 국민연금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8일 “우린 주주로서 (대한항공에)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공식 입장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조 회장과 특별한 인연이 없어 조문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복수의 국민연금 관계자는 조 회장 별세에 당황해하며 내심 불똥이 튈까 걱정했다. 그나마 조 회장 별세 소식에 한진칼 주가가 상승세를 보인 것에 안도했다.
조 회장 별세 직후 SNS에는 “국민연금이 조 회장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국민연금에서 조 회장을 죽인 거다” “문재인 정권이 조 회장 경영권을 박탈했다” 등의 격한 발언이 올라왔다. 현 정권이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를 도입하면서 부도덕한 경영진에 ‘일벌백계’ 태세를 보이긴 했지만 국민연금이 조 회장 연임에 반대표를 던진 건 이전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치만 스튜어드십코드의 첫 성과가 조 회장 연임 제지란 점에서 국민연금은 어떻게든 조 회장과 ‘악연’으로 엮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 조 회장 연임이 좌절된 데에 국민연금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다.
증권가에선 매년 주주총회 때마다 국민연금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할 걸로 보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기관투자가는 총 94곳으로 이 중 자산운용사가 33곳인데 작년 4분기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주식을 위탁한 데가 19곳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위탁운용사 선정 시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곳에 가산점을 주고 있다. 업계에선 “국민연금 눈치를 안볼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