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서 7일(현지시간) 1959년 공산혁명 이후 처음으로 시민행진이 열렸다. 60년 만에 처음 열린 시위는 동물학대 반대 시위였다. 짧고 간단해 보이는 이번 행진은 쿠바의 현대 역사에 작지만 의미 있는 한 줄을 기록한 것이라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쿠바 동물애호가 100여명은 이날 수도 아바나 중심가인 베다도에 모여 애완동물을 대동한 채 평화행진을 벌였다. 참가자들은 동물 학대 종식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손팻말을 흔들며 1.6㎞넘게 평화행진을 했다.
60년 만에 열리는 시민행진을 취재하기 위해 대부분의 외신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쿠바 관영언론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복을 입은 쿠바 보안당국 관계자 20여명은 행진을 면밀히 주시했다. 행진에 간섭하지는 않았지만 차량 정체를 피하고자 참가자들에게 이면 도로에서 행진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쿠바 당국은 그동안 공산당과 관련 없는 집회는 허용하지 않았다. 특히 승인되지 않은 반정부 진영의 정치 연설과 집회의 자유를 엄격히 통제해왔다. 쿠바의 온라인 동물애호가 잡지인 ‘더 아크’의 발행인이자 이번 행사를 조직한 알베르토 곤살레스는 “이번 행진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이것은 과거와 미래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쿠바 정부는 라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지난해 4월 미겔 디아스카넬에게 의장직을 물려준 이후 소셜 미디어 등 온라인 활동에 한층 관대하게 대응하고 있다. 이번 행사 홍보도 소셜미디어 공간을 통해 이뤄졌다.
쿠바 정부의 문화적 경직성을 비판해온 가수 실비오 로드리게스는 “나는 정부가 이번 행사를 허용한 것이 매우 똑똑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번 행사를 통해 우리가 낙관적인 느낌이 들게 된 만큼 다른 경우에도 같은 일이 일어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쿠바 정부가 당장 집회의 자유를 폭넓게 허용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쿠바 내에서는 여전히 시민운동가에 대한 탄압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행진 참가자들은 당국이 처음으로 허용한 독립적인 행진이 인권이 아닌 동물권 지지를 위한 것이라는 게 역설적이라고 지적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