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총책임자는 남고 지역구 의원은 떠나고…정의용·이양수 상반된 ‘행보’(feat.홍영표·나경원)

입력 2019-04-06 09:55 수정 2019-04-06 11:05

강원 동해안 일대 대형 산불이 발생한 지난 4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이양수 자유한국당 의원의 상반된 행보에 네티즌들의 이목이 쏠렸다. 정 실장과 이 의원은 국회 운영위원회 청와대 업무보고에 참석했다. 이날 업무보고를 해야 하는 정 실장은 오후 10시30분이 넘도록 국회에 남아있어야 했다. 그러나 강원 속초시‧고성군‧양양군에 지역구를 둔 이양수 의원은 식사 도중 소식을 접한 뒤 속초로 출발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홍영표 운영위원장이 고성에서 산불이 났다며 위기대응의 총 책임자인 정 실장의 이석을 요청했다. 그러나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야당 의원들의 한 번씩 질문할 때까지 있어야 한다고 항의해 자리를 지켰다. 나 원내대표는 정 실장의 이석을 1시간 동안 막았다는 이유로 비난 여론에 휩싸고 결국 “이석이 필요하다면 심각성을 보고하고 양해를 구해야 했는데 그런 말이 없었다”며 반박했다.

4일 오후 7시쯤 17분 고성에서 산불이 발생했을 때 운영위는 정 실장과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등 청와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현안 질의를 이어가고 있었다. 회의는 7시 52분에 저녁 식사 관계로 정회했고 9시25분에 재개됐다.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산불 피해 지역인 속초와 고성을 지역구이자 한국당 강원도당위원장인 이 의원은 지역 의원실에서 연락을 받고 오후 8시 30분쯤 강원도로 향했다. 이후 재개된 회의에서 홍 원내대표는 정 실장에게 “지금 언론에서도 크게 보도가 되고 있는데 고성 산불 문제를 얼마나 파악하고 있냐”고 물었다.

이에 정 실장은 “저녁 7시 반경에 변압기에서 발화가 돼 고성군에서 시작했지만 바람이 동향으로 불어 지금 속초 시내까지 번지고 있다”며 “민간인 대피령도 내렸고 소방차 한 50대 동원했지만, 헬기는 야간이기 때문에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우선 1차장을 위기관리센터로 다시 보내 상황을 관리토록 했다”고 말했다.



홍 위원장은 “속초 시내에서 일부 주민들 대피령이 내린 것 같다. 굉장히 상황이 심각한데 정 실장은 이 건에 대해 지휘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 위원님들이 질의를 좀 한 뒤 추가적인 질의가 없는 게 확인되면 이석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질문이 이어졌고 오후 10시가 넘어가자 홍 위원장은 “지금 저렇게 대형 사고가 생겨서 민간인이 대피까지 하고 있는데 그 대응을 해야 할 책임자를 우리가 이석 시킬 수 없다 이래서 국회에서 잡아 놓는 것이 옳은지는 저도 잘 모르겠다”며 정 실장의 이석을 주장했다.

그러나 나 원내대표는 “저희도 정 실장을 빨리 보내주고 싶다. 그러면 순서를 조정하셨으면 된다”고 맞받아쳤다. 이에 홍 위원장은 “양해를 구했더니 ‘안 된다’이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 안타깝다. 효과적으로 진행할 테니 협조를 해달라”면서 “지금 산불이 생겨 민간인이 대피까지 하고 있는데 책임자를 국회에서 잡아 놓는 것이 옳은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정양석 한국당 의원은 “외교 참사는 더 크다”며 반발했다. 나 원내대표도 “순서를 조정하면 된다. 여당 위원들, 윤준호 위원이나 하지 말고 우리 야당 위원들 하게 했으면 조금이라도 빨리 갈 것”이라며 “안보실장이 부득이 그러면 우리가 한 번 질문할 때까지 조금 계시고 그사이에 다른 관련된 비서관은 가도 좋다고 얘기했는데 마치 생방송에서 우리가 뭔가 방해하는 것처럼 말을 한다. 그러면 안 된다”고 항의했다.

오후 10시20분이 넘어서자 홍 위원장은 “아직도 질의할 의원 있냐”며 “좀 가게 하자. 지금 고성 산불 대응해야 할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 위원장은 이어 10시 38분에 “화재 3단계까지 발령됐다”며 “계속 질의할 거냐”고 반문했다. 정 실장은 이때서야 자리를 뜰 수 있었다.

이런 장면이 방송을 통해 고스란히 공개되자 나 의원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나 원내대표는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문의 해명과 반박 글을 올렸다. 나 원내대표는 “7시 45분 정회할 때까지 회의에 집중하느라 산불을 알지 못했는데 야당에는 ‘산불로 인한 이석’ 이야기는 없었고 한미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이석을 요청했다”며 “그때 내가 회의장에 없었는데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께서 ‘우리가 1회 질의가 끝난 다음에 이석하는 쪽으로 하자’고 하고 회의를 정회했다”고 설명했다.

“오후 9시 30분에야 홍 위원장이 산불에 대해 언급했고 정 실장 이석 전까지 우리에게 산불의 긴급성에 대해 보고하지 않았으며 별도의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고 한 나 원내대표는 “당시 심각성을 보고하고 이석이 필요하다면 양해를 구했어야 했는데 그런 말이 전무했기 때문에 상황 파악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고 반박했다.

나 원내대표의 이런 해명은 더 큰 논란을 일으켰다. 같은 당 소속 의원이 소식을 접하고 자리를 떴는데도 알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속초와 고성을 지역구로 둔 이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산불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11시30분쯤 고성 대책본부에 도착해 주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산림청, 소방청, 강원도 등 관계 당국과 혐의하며 산불 진화에 총력을 다했다”며 “이후 속초상황실로 달려가 속초 산불 진화에 총력을 다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의당 김동균 부대변인은 “나 원내대표는 사태의 심각성을 자신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고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속초‧양양을 지역구로 둔 자유한국당 이양수 의원이 지난 4일 오후 8시 산불 소식을 접하자마자 운영위를 떠났다고 하는데 어떻게 나 원내대표가 모를 수 있냐”고 비판했다.

상황이 난처해진 이 의원은 급히 자리를 뜨는 바람에 당에 미처 알리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이 의원은 머니투데이 더 300에 “저녁 식사 도중에 산불이 크게 번진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지역구로 출발했다”며 “다급하게 간다고 다른 의원들에게 심각한 상황이라 얘기할 기회가 없었다”고 밝혔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