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밤 강원도 속초시 장사동에 위치한 속초고. A군은 평소와 다름 없이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있었다. 중간에 총감독 선생님에게 전화 한통이 걸려 왔다. 전화를 받는 선생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전화를 끊자마자 선생님이 말했다. “위험한 상황이니 어서 대피하자.”
속초고 학생 A군이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속초를 덮친 전날 밤 상황을 5일 전해줬다. 인터뷰는 SNS를 통해 서면으로 이뤄졌다.
대피 지시를 받은 학생들은 급하게 교실을 빠져나왔다. 산불은 이미 번지고 있었다. A군은 “교실에서 나왔을 때 약간 탄 냄새를 맡았고 산 저편에서 불이 난 것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학교의 대피 조치는 일대에 대피문자가 전송되기 전에 이뤄졌다. A군은 “야간자율학습 감독 선생님이 대피하라고 말씀하시고 난 후 10분에서 20분쯤 지나 장사동 일대와 속초고등학교에 있는 사람들이 대피 문자를 받았다”고 밝혔다. 국민재난안전포털 게시 자료에 따르면, 속초고 일대에 대피문자가 전송된 건 오후 8시 33분 06초였다. 따라서 교사의 대피 지시는 이보다 10~20분 전인 오후 8시 13~23분 무렵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 학교 및 교사들의 판단이 누구보다 정확하고 신속했던 셈이다.
이후 대처도 빛났다. A군은 “먼저 대피해서 끝까지 볼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선생님들께서 학생들이 다 나갈 때까지 학교에 남아계셨던 것 같다”며 “다른 선생님들께서는 본인들 자동차를 이용해서 당장 집에 갈 수 없는 학생들을 집으로 데려다 주셨다. 학부모님들도 빠르게 학교에서 자녀를 데리고 갔다”고 말했다.
이어 “선생님들과 부모님 덕분에 학교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빠르게 대피할 수 있었다”며 “불이 학교 바로 뒷산까지 온 거로 아는데 소방관님들이 열심히 진압해주셔서 학교까지 번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감사를 표했다.
다만 언론들의 오보에는 상처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어제는 뉴스로만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학교가 전소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정말 마음이 아팠고 걱정이 됐다”며 “사실은 분리수거장 옆 작은 창고만 전소했다. 분리수거장은 조금 피해가 있긴 했다. 분리수거장 지붕이 조금 녹고 벽면 일부가 그을렸다. 하지만 전소하지는 않았다. 속초고등학교의 기숙사와 본관은 모두 멀쩡했다. 매점도 이상이 없었다”고 전했다.
A군은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향한 걱정도 잊지 않았다. “순식간에 퍼진 산불로 인해 학교 주변의 주택과 본교 재학 중인 학생, 선생님들을 포함하며 많은 주민께서 피해를 봤다는 사실을 들었다”며 “하루빨리 모든 피해가 정리될 수 있으면 좋겠다. 학생들이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을 찾아 피해가 빨리 복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함께 힘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A군은 “지금 제가 이 인터뷰를 하는 게 자칫 피해를 보신 분들께 상처를 줄까봐 무섭다. 인터뷰는 산불이 정리되고 보도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배려심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박준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