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가 휘집고 간 강원도 고성 토성면의 한 카센터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지붕으로 얹은 샌드위치 판넬은 안쪽 스티로폼이 다 녹아 U자 형태로 휘어 내려앉았다. 카센터 앞에 주차돼 있던 차량 5대는 불에 타 앙상한 회색 뼈대만 남아있었다. 차량 앞바퀴의 알루미늄 휠도 다 녹아내려 땅바닥에 늘러 붙었다.
5일 오후 1시쯤 찾은 카센터 내부에서는 소방관들이 잔불 처리 작업에 분주했다. 이따금씩 잔해 더미에서 매캐한 잔불 연기가 다시 피어올라 카센터 주변에 퍼지면 소방관들이 급히 진화에 나섰다. 잔불 근처엔 자칫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액화천연가스(LPG)가스통이 있어 소방관들은 긴장한 모습이었다.
울산소방서에서 파견을 온 김동근 소방위는 “오전 2시쯤 속초에 도착했는데 불씨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며 “내일쯤 결론이 날 것 같다”고 했다. 김 소방위는 “잔불을 정리하다보면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포함된 연기를 마시게 돼 소방관들이 고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체성 유기화합물인 포름알데히드는 목, 코 등에 자극을 주고 호흡곤란을 유발하기도 한다. 김 소방위는 유해물질이 포함된 화재 연기 때문에 2017년 침샘암 투병도 했지만 이번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새벽부터 속초로 달려왔다.
카센터 주변 주택에 살던 주민들은 간 밤을 “지옥 같았다”고 했다. 저녁밥을 먹다가 대피문자를 받고 집밖으로 뛰쳐나온 김모(68·여)씨는 “바람을 따라 주먹만한 불덩이가 하늘에서 날아들었다. 지옥 같았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도로변으로 나가 지나가던 관광버스라도 타려고 손을 흔들었지만 버스를 잡지 못했다. 결국 그는 직접 차량을 몰고 연기에 덮여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도로를 달려야 했다. 김씨는 “차를 타고 가다가 앞서 잡으려 했던 관광버스가 길가에 불에 타 멈춰 있는 걸 봤다”며 “너무 무서워서 바닷가 근처 길로만 달려 도망쳤다”고 말했다.
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속초 시내 곳곳은 적막하고 황폐했다. 장사동에 위치한 영동극동방송 건물은 외벽이 새까맣게 그을리고 유리창이 모두 깨져 화재 당시의 참혹상을 보여줬다. 도로의 신호등은 불에 타 녹아 흘러내려 굳어 있었다.
중앙동은 한 동네가 통째로 불에 타버릴 만큼 피해가 컸다. 인기척은 없고 한 주택 앞에 묶여있는 강아지 한 마리가 낑낑대며 소리를 낼 뿐이었다. 흰색 털이 불에 그을린 강아지는 목줄 때문에 도망도 못 간 듯했다. 산자락 밑에 8채의 벽돌집이 붙어 있던 이 동네는 모두 불에 탔다. 흰색 벽돌 벽면의 일부만 검게 그을린 채 위태롭게 서 있었다. 아직 꺼지지 않은 잔불에서 뿌연 연기가 피어올라 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민들이 미처 챙겨 나오지 못한 프라이팬, 그릇, 냄비 등 가재도구가 주택가 한편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이 곳 집을 임대해주고 있던 박성철(58)씨는 “불길이 가까워질 때 세입자들에게 도망가라고 소리쳤는데 바로 도망가지 않고 한 시간이나 불을 끄려고 했다”며 “대부분 고물상, 고철물을 모으거나 헌옷을 주워다 내파는 사람들이라 집이 불 타면 오갈 데가 마땅치 않아 끝까지 사수하려 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날 오후 4시 기준으로 고성과 속초의 산불은 주불 진화율이 100%, 인제는 85%, 강릉 60%이었다. 큰 불길은 잦아들고 있지만 소방당국은 다음날까지 잔불 진화와 감시를 지속할 계획이다.
속초=이동환 기자, 최예슬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