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성 비망록’ 이팔성 “도움 바라고 MB에 자금 지원” 증언

입력 2019-04-05 16:52 수정 2019-04-05 16:53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인사청탁을 하고 뇌물을 건넨 경위가 소상히 담긴 ‘이팔성 비망록’을 작성한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5일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대선 자금에 잘 쓰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돈을 전달했다”고 증언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18회 공판기일을 열었다. 앞서 지난 3월 증인 신문이 예정돼 있었지만 이 전 회장이 건강을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증인 신문이 불발됐다. 이에 재판부는 구인장을 발부하겠다고 밝혔다.

이 전 회장이 자진 출석하면서 구인장은 집행되지 않았다. 다만 ‘증인 지원 신청서’를 재판부에 제출해 법정 내 별도의 공간에서 대기하다가 법정 증인석에 섰다. 재판부가 “피고인(이 전 대통령)과 대면을 원치 않으면 가림막 등을 설치할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그냥 하겠다”며 증인 신문에 임했다.

이 전 회장은 2007년 1월~2008년 4월 금융위원회 위원장이나 산업은행 총재 임명 혹은 국회의원 공천을 대가로 이 전 대통령에게 19억6230만원, 2010년 12월 ~2011년 2월 우리금융지주회장 연임 대가로 3억원 등 총 22억6230만원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이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를 입증하는데 핵심 증거 중 하나였던 ‘이팔성 비망록’에는 이 전 회장의 인사청탁 및 금전 공여를 둘러싼 경위, 당시 심경들이 소상히 담겨있다. 비망록에는 ‘이명박과 인연을 끊고 다시 세상살이를 다시 시작해야하는지 여러 가지로 괴롭다. 나는 그에게 약 30억원을 지원했다. 옷값만 얼마냐. 그 족속들이 모두 파렴치한 인간들이다’ 등이 원망스런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1심 재판부는 비망록의 내용을 토대로 이 전 대통령이 19억원과 1230만원 상당의 양복을 제공받은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이날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이 “2007년 자금을 지원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고 묻자 “가깝게 계신 분이 큰 일을 하게 돼서 돕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며 “제가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어 변호인이 “대선의 공로자라서 응분의 대가를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냐”고 묻자 그는 “공로라는 생각까지는 아니지만 열심히 열정을 가지고 일을 했고 나름 정책적 건의도 많이 해서 그래서 (그렇게 생각했다)”고 답했다.

변호인이 ‘대통령으로부터 tell.KRX(한국거래소) 어떠냐고 함’ 기재에 대해 묻자 “이 전 대통령이 먼저 전화해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며 “KRX 이사장을 저보고 하라고 했으면 제대로 해놨어야하는데 (탈락하니) 원망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증언했다.

이 전 회장은 2007년과 2008년 서울 가회동을 찾아가 이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에게 돈을 각각 1억원과 2억원씩 전달했다는 증언도 내놨다. 그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사전에 (사위인) 이상주 변호사와 통화를 하고 가회동에 갔다”며 “대문 안쪽에 돈 가방을 놓고 마루 쪽에 있는 (김 여사) 얼굴만 보고 가고 그랬다”고 말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