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 맞은 듯…속초 고성 산불현장

입력 2019-04-05 13:06
5일 산불 피해를 입은 고성군 토성면 용촌1리 마을의 한 주택이 폭격에 맞은 듯 지붕이 폭삭 주저앉아 있다.

5일 산불 피해를 입은 강원도 속초시와 고성군 일대는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주택들은 폭격을 맞은 것처럼 벽체만 남은 채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 나왔다. 마을 곳곳은 코를 찌르는 듯한 메케한 냄새로 가득했다.

속초시 영랑호에서 고성군 토성면을 잇는 국도 7호선 양옆으로는 멀쩡한 집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다. 단층집들은 지붕이 모두 폭삭 내려앉았고, 조립식 판넬로 지은 창고들은 벽체가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었다.

속초시 장사동의 한 창고는 1800㎡가 넘는 건물 모두가 화재피해를 입었다. 수 백 병에 이르는 술병은 모두 깨졌고, 술을 담고 있던 플라스틱 상자는 곤죽이 돼 녹아버렸다.

건물주인 박성기(62)씨는 “워낙 순식간에 불이 옮겨붙어 불길을 피할 겨를이 없었다”며 “창고에 고가의 물건이 많이 보관돼 있어 족히 20억원이 넘는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창고를 임대해 쓰는 사업자들 가운데 화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분들이 계셔 피해를 어찌 복원할지 걱정이 된다”고 덧붙였다.
5일 산불 피해를 입은 고성군 토성면 용촌1리 마을의 한 골목길에 불에 탄 소나무가 쓰러져 있다.

고성군 토성면 용촌1리 마을은 쑥대밭이 됐다. 골목골목마다 연기가 피어올랐고, 부서진 슬레이트 지붕이 널브러져 있었다. 마을회관 바로 앞 주택은 한쪽 벽면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멀쩡해 보이는 옆 건물은 주택 내부가 모두 불에 탔고, 가전제품은 모두 녹아내렸다.

도로 곳곳에선 통신사 직원들이 통신선을 복구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도로와 인접한 야산에선 산불진화대원들이 잔불 정리에 구슬땀을 흘렸다.

전날 고성 아야진초교와 속초 영랑초교 등 17곳의 대피소에선 4000여명의 주민들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장정자(62‧여)씨는 “가족들과 함께 전날 밤 10시에 인근 속초감리교회로 대피했다”며 “불이 집 앞 야산까지 내려와 정말 무섭고 겁이 났다”며 “혹시라도 집에 불이 옮겨붙을까 봐 잠한 숨 자지 못했다. 새벽 3시쯤 집에 돌아왔는데 불이 붙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고 말했다. 이어 “불이 이렇게 무서운지 몰랐다. 정말 모든 걸 싹 태웠다”고 말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5일 산불 피해를 입은 속초시의 한 창고 건물에서 건물주인이 피해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4일 오후 7시17분쯤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한 주유소 맞은편 도로변 변압기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은 초속 7m가 넘는 강풍을 타고 고성군 토성면 천진 방향과 속초시 장사동 방향 두 갈래로 확산했다. 소방당국은 펌프차 등 장비 23대와 소방대원 등을 투입해 초기 진화에 나섰지만 강풍 때문에 큰 불길을 잡는 데 실패했다.

고성 산불은 진화작업을 마치고 잔불을 정리 중이다.

강원도동해안산불방지센터는 5일 오전 9시37분쯤 주불진화를 완료하고 잔불진화 및 뒷불감시에 돌입했다고 밝혔다.산불 진화에는 산불진화헬기 총 17대, 진화인력 1만671명, 진화인력 및 진화차 23대, 소방차 93대가 투입됐다.

밤새 인근 초등학교 등으로 대피했던 마을 주민들은 화세가 잡힘에 따라 387명의 이재민을 제외한 마을주민은 집으로 돌아갔다. 산불로 1명이 숨졌고, 주택 125채와 창고 및 비닐하우스 11동이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불 피해 면적은 250ha로 추정된다.

속초=글·사진 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