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어른들 말처럼 불이 500~600m씩 날아다녔어요. 도깨비처럼.”
5일 오전 강원도 속초시 산불 화재현장에서 만난 이용순(52)씨는 간밤의 불을 ‘도깨비불’이라 설명했다.
이씨는 “산불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아파트에서 바라본 산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며 “커다란 불기둥이 하늘로 날아올라 500~600m를 날아간 뒤 다른 산에 옮아붙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시 커진 산불이 불기둥이 돼 또다시 날아올라 다른 산으로 옮아붙기를 반복했다”고 전날의 악몽을 떠올렸다.
이날 불은 이씨의 부모님이 사는 속초시 영랑호 인근 주택도 집어삼켰다.
벽돌로 된 1층 집은 전날의 화마를 견디지 못하고 벽체만 남긴 채 모든 것이 사라졌다.
이씨의 부인은 “시부모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 겨우내 시내 집으로 미리 모셔 천만다행”이라며 “아침에 집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을 찾아왔는데 이렇게 피해가 클 줄 몰랐다”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4일 오후 7시17분쯤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한 주유소 맞은편 도로변 변압기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은 강풍을 타고 고성군 토성면 천진 방향과 속초시 장사동 방향 두 갈래로 확산했다.
이날 오후 6시10분 기준 최대 순간풍속은 미시령 초속 35.6m, 속초 설악동 초속 23.4m, 고성 현내 초속 22.6m 등을 기록했다.
소방당국은 펌프차 등 장비 23대와 소방대원 등을 투입해 초기 진화에 나섰지만 강풍 때문에 큰 불길을 잡는 데 실패했다.
전날 인근 초등학교로 대피한 속초와 고성지역 주민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박모(60·여)씨는 “전날 9시쯤 누군가가 대문을 두드리며 빨리 대피하라고 소리쳤다”며 “밖에 나와보니 붉은 불길이 집 바로 뒷산까지 와 있었다”며 “대피소에서 걱정이 돼 잠 한숨 못 잤다”고 말했다.
고성 산불은 큰불을 잡고 잔불을 정리 중이다.
강원도동해안산불방지센터는 5일 오전 9시37분쯤 주불 진화를 완료하고 잔불 진화 및 뒷불 감시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산불 진화에는 산불진화헬기 총 17대, 진화인력 1만671명, 진화인력 및 진화차 23대, 소방차 93대가 투입됐다.
밤새 인근 초등학교 등으로 대피했던 마을 주민들은 화세가 잡힘에 따라 387명의 이재민을 제외한 마을주민은 집으로 돌아갔다.
산불로 1명이 숨졌고, 주택 125채와 창고 및 비닐하우스 11동이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불 피해 면적은 250ha로 추정된다.
고성=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