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실장 못가게 하더니…정치인들, 아침엔 우르르 산불 현장에

입력 2019-04-05 10:06 수정 2019-04-05 21:34

여야 지도부가 5일 오전부터 대형 화재가 발생한 고성 등 피해 지역을 앞 다퉈 방문하고 있다. 하지만 화재가 점점 커지던 4일 저녁,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상대로 질문을 이어가는 등 ‘민생보다 정쟁’에 치중한 모습을 보여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나경원 자유한국당 대표가 정 실장의 이석에 합의해주지 않으면서 재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정 실장은 오후 10시38분까지 국회에 있어야 했다. 박광온 민주당 의원은 “산불 재난사태에 안보실장을 잡고 안보내 준 것은 국회가 아니라 ‘자유한국당’”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4일 오후 11시 15분 “가용 자원을 모두 동원해 총력 대응하라”고 전 부처에 긴급 지시를 내렸다.

가장 먼저 화재 현장을 찾은 건 황교안 한국당 대표다. 황 대표는 4일 저녁 화재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보고 현장 방문을 결정, 5일 아침 일찍 강원도로 향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5일 오전 강원도 화재 현장 방문 일정을 급하게 추가했다.

국회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 원내대표는 4일 저녁 회의 때 “지금 고성 산불이 굉장히 심각한 것 같다. 정의용 안보실장은 위기 대응의 총책임자”라면서 “정 실장을 조금 일찍 떠나게 하면 좋겠다고 얘기를 했는데 (한국당이) 합의를 안 해줬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안타깝다”고 작심 발언을 했다. 이어 “책임자를 국회에서 잡아 놓는 것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자 한국당 의원들의 반발이 쏟아졌다. 정양석 한국당 의원은 곧바로 “외교 참사는 (문제가) 더 크다”고 비판했다. 이어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심히 유감을 표한다. 저희도 정 실장을 빨리 보내드리고 싶다. 그러면 순서를 조정하셨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희가 청와대 한 번 부르기 쉽습니까. 처음 하는 업무보고”라며 “고성 산불을 (얘기)하면서 마치 우리가 무슨 발목 잡기 하는 것처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산불도 중요하지만, 청와대를 상대로 한 질의도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회의가 마저 진행되고, 홍 원내대표가 다시 한 번 “(정 실장을) 좀 가시게 하지요. 지금 고성 산불 대응을 해야 될 것 아니냐”고 말하자 강효상 한국당 의원은 “1분 안에 끝내겠다”, 송석준 한국당 의원은 “저도 그러면 2분” 이라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가 재차 “속보를 한번 보시라. 지금 화재 3단계까지 발령됐다. 이런 위기 상황에는 책임자가 이석을 하는 게 기본적”이라면서 “그 정도의 문제의식을 함께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촉구했다. 결국 정 실장은 오후 10시38분이 돼서야 국회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이에 대해 한국당은 “정 실장이 이석하기 전까지 산불의 긴급성에 대해 보고하지 않았고 별도의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산불의 긴급성을 몰랐고, 정쟁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민주평화당은 논평을 통해 “국회 운영위에서 국가 위기대응 총책임자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밤늦게까지 잡아놓고 못 가게 한 자유한국당이 오늘 아침 부랴부랴 강원도 산불 현장으로 달려간 것은 청개구리 심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황교안 대표는 무슨 낯을 들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황급히 화재현장을 방문하는지 참으로 딱하다”고 지적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