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보다 北 어린이 생명 앞에 둬야”…UN기구, 美에 대북 식량지원 요구

입력 2019-04-04 10:32 수정 2019-04-04 10:38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데이비드 비즐리 사무총장이 3일(현지시간) “정치보다 어린이들의 생명을 앞에 둬야 한다”면서 북한에 대한 대규모 식량 지원을 미국 백악관과 서방 국가들에 요구했다.

비즐리 사무총장은 “북한 정권이 열악한 상황을 확인하고 싶다는 WFP의 현지조사 요구를 수용했다”고 말했다.

함흥에서 찍은 북한 어린이들의 모습. AP뉴시스

유엔 WFP의 호소가 미국의 대북 제재 방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특히 비즐리 총장은 미국 공화당 당적으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를 지냈으며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다. 비즐리 총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인연이 대북 식량 지원에 돌파구를 마련할지 여부도 지켜볼 대목이다.

비즐리 총장은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흉작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6월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북한의 어린이들은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가 이에 대응해 밀 5만t을 보내고 있고, 중국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면서 “서방국가들도 비핵화 협상 교착 상태가 풀려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쳐 돕기를 여전히 원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긴 하지만 서방국가들도 북한을 돕기를 희망한다는 의미다.

비즐리 총장은 그러면서 “(식량 지원이) 북한 정권을 도울 것이라는 걱정이 있다”면서 “그러나 정치 때문에 무고한 어린이들이 고통받게 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즐리 총장은 또 “북한 정권이 원조의 필요성을 서방국가들에 설명하기 위해 북한의 열악한 상황을 확인하고 싶다는 WFP의 현지조사 요구를 수용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 지도부와 매우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면서 “나는 북한 지도부에 ‘현실이 어떤지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완벽히 독립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비즐리 총장은 “북한 당국은 우리 요청한 모든 자료를 전달했다”면서 “그들은 (WFP의 본부가 있는) 로마를 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끔직한 상황에 놓여있으며 그들은 우리에게 도움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WFP는 북한이 지난해 홍수와 폭염 피해를 입으면서 올해 쌀·밀·감자·콩 등 140만t의 식량이 부족할 것으로 추산했다. 또 북한 전체 주민의 40%에 해당하는 1100만명이 영양실조 상태에 빠져 있으며 어린이 5명 중 1명은 만성적인 영양 부족으로 성장 발육이 더디다고 추정했다.

비즐리 총장의 호소가 대북 식량 지원에 물꼬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완전한 비핵화 이후 대북 제재 해제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공허한 외침으로 끝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