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광주 서구 쌍촌동 운천저수지.
이날 운천저수지는 주말을 맞아 활짝 핀 벚꽃을 만끽하려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인근 도로에는 차량들이 길게 늘어섰다. 어린 자녀와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오후 4시 50분쯤, 평화로운 듯했던 도로에서 승합차 한 대가 지그재그로 위태롭게 운전하며 인도로 향하기 시작했다.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대학생 김성후(호남대 의상디자인학과·25)씨가 조수석에 올라타는 기지를 발휘해 차를 멈춰 세웠다. 김씨는 주위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술에 취한 운전자를 끌어냈다. 60대 운전자는 혈중알코올농도 0.214%로 만취 상태였다. 김씨는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그가 다시 운전대를 잡지 못하도록 지키는 역할까지 했다.
평화로운 봄날의 참사를 막아낸 김씨와 전화로 인터뷰해 자세한 상황을 들어봤다.
Q. 만취 차량을 처음 발견했을 당시 상황은
“카페에서 나와 길을 걷는데 반대편 차선에서 스타렉스 한 대가 오고 있었습니다. 어떤 분께서 운전석 문을 계속 열려고 하더라고요. 운전자가 타 있고 차도 움직이는 상태였는데도요. 일단은 지켜보고 있었는데, 문이 열린 뒤에 보니까 운전자 분이 몸을 뒤쪽으로 젖히고 누워 있다시피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어디 아파서 운전을 하지 못하는 상황인가 생각했어요. 달려가 봤더니 문을 열었던 분은 브레이크를 밟고, 운전자 분은 엑셀을 밟고 있었어요. 차량이 인도 쪽을 향해 있어서 그대로 뒀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Q. 조수석에 올라탈 생각은 어떻게 했는지
“운전석에는 공간이 없어서 뭘 할 수가 없으니 일단 조수석으로 간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문이 열리더라고요. 차에 타니 술 냄새가 진동해서 음주운전이라는 걸 알았죠. 곧바로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운 뒤 시동을 끄고 차키를 뽑으니 차가 멈췄습니다.”
Q. 움직이는 차에 올라타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
“위험하다 안 위험하다 따질 겨를이 없었어요. 일단 멈춰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던 것 같아요. 몸이 먼저 나갔다고 해야 할까요.”
Q. 차를 멈춰 세우는 과정에서 운전자의 저항은 없었는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한 상태여서 별다른 저항은 없었습니다. 다만 차가 멈춘 뒤 내려서 비틀거리며 차도 쪽으로 가려고 하길래 붙잡았더니 ‘이거 놓으라’ ‘내가 뭘 잘못했냐’ 하더라고요. 그 와중에 일행으로 추측되는 분들이 일단 신고하지 말아달라고 했는데 (제) 여자친구가 곧장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Q. 주변 상가 상인의 도움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운전자가 주변 상가 쪽으로 향하더니 안으로 들어가셨어요. 많이 취한 상태였으니 무슨 일이 또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일단 나오지 못하게 출입문을 잡고 있었어요. 상가 계단을 한참 오르내리시더니 저한테 문 열라고, 나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한 상인 분께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시길래 살짝 문을 열고 설명해드렸죠. 그랬더니 ‘좀만 기다리자’고 운전자 분을 타일러주셨어요. 덕분에 운전자 분이 계단에 얌전히 앉으시더라고요. 잠시 후 경찰 분들이 오셔서 연행해 가셨어요.”
Q. 또 다른 시민들의 도움은 없었는지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운전자 분을 함께 타이르며 도와주셨어요. 당시에 비가 조금씩 내렸는데 우산을 씌워주시기도 했고요. 일행으로 보였던 분들은 상황이 일단락된 뒤에 보니까 안 계시더라고요. 신고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던 그 분들이요. 처음 운전자석 문을 열었던 분도 금세 사라지고 안 계셨어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처음부터 음주운전이라는 걸 알고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음주운전은 순간의 실수로 무고한 시민들을 비롯해 운전자까지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대낮에도 이런 상황이 일어날 수 있음을 항상 인지하고 시민과 경찰 모두 음주운전 근절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언가 바라고 했던 일이 아닌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말도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도울 수 있는 일 도우면서 살겠습니다.”
백승연 인턴기자